한 국가를 대표하는 두 여성의 현재는 닮은 듯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2월25일 오후 청와대에서 잉락 친나왓 타이 총리를 영접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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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광은 같으나, 입지는 다르다. 잉락 친나왓 타이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을 말하는 거다. 두 사람 모두 오빠나 아버지의 후광으로 최고 권력자에 올랐으나, 잉락 총리는 타이의 비주류에, 박 대통령은 한국의 주류에 입지한다. 그래서 정치적 처지도 다르다. 잉락 총리는 실각의 위기에, 박 대통령은 아직 탄탄대로이다.
그들을 권력에 오르게 한 오빠나 아버지의 출신과 유산은 대조적이다. 잉락의 오빠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타이의 소수집단인 중국 화교였지만 부잣집 아들이었고,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의 다수집단인 경상도 출신이지만 빈한한 소농의 아들이었다. 탁신은 경찰, 박정희는 군 출신이었다. 탁신은 경찰에서 닦은 인맥으로 일어섰고, 박정희는 군에서 닦은 인맥으로 일어섰다. 탁신은 타이 사상 최대의 선거 승리로 집권했고, 박정희는 한국 사상 최초의 쿠데타로 집권했다. 탁신은 집권 전에 스스로 재벌이 됐고, 박정희는 집권 뒤에 다른 이들을 재벌이 되게 했다.
부잣집 출신이고 재벌이었던 탁신과 가난하고 소외된 군 장교였던 박정희는 집권 동안 사뭇 비슷한 정책을 폈다. 두 사람 모두 농촌의 빈곤 타파를 핵심으로 하는 정책으로 지지 기반을 넓혔다. 탁신은 북부의 마약단속과 남부의 무슬림 소요 진압에서, 박정희는 반공과 반체제 단속에서 엄청난 인권 유린과 강압 정치를 자행한 것도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탁신은 여전히 소외되고 다수인 북동부 농촌 지역을, 박정희는 산업화의 혜택을 누린 다수의 남동부 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분할 정치의 씨를 뿌렸다.
그 결과는 사뭇 달랐다. 개인적으로 주류와 가까웠던 탁신은 완전히 비주류로 전화해 그들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고, 비주류였던 박정희는 완전히 주류로 진화해 그들의 대부가 됐다.
탁신의 정책은 부패한 포퓰리즘, 즉 대중인기영합주의로 매도되고, 박정희의 정책은 개도국이 본받아야 할 기념비적인 성장정책으로 칭송된다. 이 평가를 따지는 것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부패한 포퓰리즘이라는 평가를 받는 탁신의 집권 기간 동안 공공분야의 부채는 2001년 국내총생산의 57%에서 2006년 41%로 떨어지고, 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는 2000년 0.525에서 2004년 0.499로 떨어지는 등 그의 공과는 일면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정희와 그의 정책 역시 성장과 개발의 이면에는 소외와 불평등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평가가 있다. 두 사람의 공과는 아마 역사가 판단할 몫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두 사람이 각자의 나라에서 여전히 다수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고, 그 결과가 그들의 혈육인 잉락과 박근혜의 집권으로 나타났다. 탁신은 쿠데타 등으로 해외를 떠돌지만, 그의 집권 이후 그 정치세력은 5차례의 선거에서 압승하고, 누이인 잉락의 집권까지 이어졌다. 박정희는 총탄으로 저승에 갔지만, 30년이 넘어 딸인 박근혜가 선거에서 집권했다.
하지만 잉락과 박근혜의 처지는 사뭇 다르다. 선거에서 압승으로 연전연승한 탁신의 계승자인 잉락이지만, 정부 기능을 마비시키는 주류 반대세력의 시위에다가 쌀값 보조정책이 국고낭비와 부패를 조장했다며 탄핵의 위기에 놓여 있다. 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신승한 박근혜는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구의 개입 등에 대한 비주류 반대세력들의 항의에도 꿈쩍 않고 있다. 아마 이 차이는 잉락이 힘없는 비주류에 입지해 있고, 박근혜는 힘있는 주류에 입지했다는 차이에 기인할 것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정치적 미래가 여전히 같은 맥락으로 갈 것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잉락과 그 정치세력은 선거만 치러지면 여전히 이길 가능성이 높고, 박근혜와 그 정치세력은 선거에서 그만큼 자신할 수 없는 처지다. 잉락과 박근혜는 각자의 나라에서 여전히 배회하는 탁신과 박정희라는 과거의 유령들이 벌이는 싸움을 대리한다. 하지만 이 유령들을 청산하려는 마지막 단말마이기도 하다. 두 나라 모두 이 유령들을 장례 지내지 않고는 미래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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