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국 각료 “새로운 진전” 발표
농산물 관세협상 입장차 여전
일 “쌀 등 5대 농산물 예외 인정”
미 “모든 품목 관세 원칙적 철폐”
공약했거나 선거 앞둬 타협 난망
결렬땐 두 나라 책임론 불거질듯
농산물 관세협상 입장차 여전
일 “쌀 등 5대 농산물 예외 인정”
미 “모든 품목 관세 원칙적 철폐”
공약했거나 선거 앞둬 타협 난망
결렬땐 두 나라 책임론 불거질듯
* TPP :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지난 22일부터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하 티피피) 각료회의가 다음 일정도 잡지 못한 채 폐회됐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아세안, 오세아니아 국가 등을 한 데 묶어 무역·투자의 자유화를 이루자는 티피피의 동력이 급속히 사그라지는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티피피 교섭에 참가하고 있는 12개국 각료들은 25일 나흘간의 회담을 끝낸 뒤 “최종적인 협정을 향해 새로운 진전을 이뤄냈다.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려고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어두웠다. 참가국 사이의 이견이 일찌감치 확인된 탓에 기자회견이 예정된 오후 5시보다 2시간 정도 당겨졌고, 회견에 참석한 각료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6일 “각료들이 피곤한 표정이라기보다는 무표정이었다. 지난해 말 회의까지 남아 있던 흥분이나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짚었다.
가장 큰 문제는 미-일 간에 진행 중인 일본의 농산물을 둘러싼 관세 협상이었다. 팀 그로서 뉴질랜드 무역장관은 “(관세 철폐 등) 시장 접근 분야 교섭의 진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게 합의되지 않으면 교섭은 끝나지 않는다”고 미-일에 간접적인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나 미-일 모두 정치적인 이유로 양보와 타협의 여지가 매우 적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쌀 등 주요 농산물 5개 품목을 지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를 함부로 건드리다간 공약 위반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아마리 아키라 일본 티피피 담당상은 고심 끝에 쇠고기·돼지고기 등 미국의 관심이 높은 부분과 관련한 ‘관세 철폐 또는 대폭 인하’라는 양보안을 들고 협상에 임했다. 그러나 회담 첫날인 22일부터 “모든 품목에 대한 관세의 원칙적인 철폐”를 주장하는 미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묘한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보호무역 색채가 강한 미국 민주당 의원들은 자유무역 협상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국내 반대세력을 납득시킬 수 있는 진전된 양보안을 일본한테서 끌어내야 한다. <아사히신문>은 “이를 위해 미국이 다른 나라와 협상을 마무리짓고 일본을 고립시켜 더 많은 양보를 끌어내려는 전략으로 이번 협상에 임했다”고 짚었다.
미국 언론들도 협상 전망을 부정적으로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은 5대 민감 농산물 시장을 보호하길 원한 반면에 미국은 이들 상품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미국 쪽은 일본에 미국 자동차 수출을 방해하는 다양한 기술적 장벽들을 제거하라고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이로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4월 아시아 순방 전에 티피피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 사실상 물건너 간 분위기다. 마이클 프로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현 시점에서 다음 회담 계획을 잡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은 없다.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때 교섭이 끝난다”고 말했다. 이미 협상 참여에 ‘관심 표명’을 한 한국 정부가 언제쯤 이 협상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프로먼 대표는 “지금 우리는 추가 회원국을 받아들이는 것을 고려하기 전에 12개국 사이의 협상 종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일 양국이 정치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짚었다. 협상이 끝내 결렬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물론, 일본 책임론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도쿄 워싱턴/길윤형 박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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