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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원전 확대는 특성 세력 이득과 국민의 생명을 맞바꾸는 것”

등록 2014-05-28 16:12수정 2014-05-30 10:49

염광희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 연구원
염광희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 연구원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기획 ‘한국 사회 좌표, 독일서 찾다’ 3
염광희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 연구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일 세월호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곧바로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로 떠났다. 이 곳에 수출한 원자로 설치 행사 참석을 위해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가 주된 화두로 떠올랐지만, 원전에 대한 ‘안전불감증’은 박 대통령의 행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원전으로 인한 재난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도 보듯 그 피해규모를 감히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국 정부는 유독 원전에 관대하다.

염광희(39) 독일 베를린자유대 환경정책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과 한국이 선택한 ‘전혀 다른 길’에 주목하고 있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24년까지 모두 13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염 연구원은 2002년부터 6년 동안 환경운동연합에서 에너지 관련 환경운동을 하다가 2008년 독일로 넘어왔다. 환경운동을 시작할 때 그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이고 정치였다. “어떤 기술을 선택하고,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결정하는 가치관과 정책이 에너지 문제의 핵심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독일과 한국이 원전을 대하는 정 반대의 시선은 그에게 정치와 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독일의 ‘탈핵’ 선언, 한국은 ‘친핵’ 행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뒤 독일에서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가 소집됐다. 교수, 산업계, 환경 관료 등으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는 8주간의 활동 끝에 17기의 원전 전부를 10년 안에 폐쇄할 것을 권고했다. 원전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어떤 발전소보다 피해의 공간적, 시간적 범위가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 권고를 받아들였다. 우리나라의 대응은 정 반대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위기가 기회’라는 발언을 통해 원전 확대에 힘을 실었다. 우리나라 최고령 핵 발전소인 고리 원전 1호기는 2007년 설계수명 30년이 끝난 뒤에도 10년간 더 가동하도록 승인됐다. 2년 전 전원 공급 장치 문제로 가동이 멈췄지만, 지난달 16일 다시 재가동에 들어갔다. 사고와 고장만 130번에 이르지만, 고리 원전은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대형 원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안전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염 연구원은 “원전은 하루빨리 폐쇄해야 한다”며 “원자로 폭발이라는 재앙이 아니더라도, 아직 핵 폐기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우리 세대는 물론 후손들까지 원전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에 동의했느냐”며 되물었다.

다음 세대까지 위험이 이어지는 원전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활개를 치는 이유는 뭘까. 염 연구원은 ‘원피아(원자력 마피아)’의 카르텔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에너지 산업체, 연구자, 관료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분야라 일반인들은 접근하기도 쉽지 않아요. 정부 지원금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다시 로비를 하고 카르텔은 더 견고해집니다.”

베를린 근교에 위치한 포츠담에 있는 협동조합 형태의 태양광발전소. 시민들이 참여한 이 협동조합은 경찰차 주차장을 임대해 180kWp 용량의 발전소를 세워 전력을 판매하고 있다. 독일에는 이러한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을 주사업으로 하는 에너지 협동조합이 2013년 말 기준 888개(조합원 수 약 13만 6천명) 있다. 새로운 에너지 협동조합 제공
베를린 근교에 위치한 포츠담에 있는 협동조합 형태의 태양광발전소. 시민들이 참여한 이 협동조합은 경찰차 주차장을 임대해 180kWp 용량의 발전소를 세워 전력을 판매하고 있다. 독일에는 이러한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을 주사업으로 하는 에너지 협동조합이 2013년 말 기준 888개(조합원 수 약 13만 6천명) 있다. 새로운 에너지 협동조합 제공
독일은 원전을 없애고 205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5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그 핵심에 ‘시민발전소’ 사업이 있다. 지역 주민이 함께 출자해 조합을 만들어 태양광, 풍력발전소를 설치하고 그 이익을 분배하는 형태다. “외부 기업이 우리 땅에 와서 돈만 벌어간다는 부정적 인식을 없앨 뿐 아니라, 주민들의 새로운 수익사업으로도 기능합니다. 프로젝트 개발 기업과 지역 주민이 상생하는 윈윈 경제입니다.”

 

“안전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

환경 규제에 대한 인식에서도 두 나라 간 차이가 크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규제개혁’을 선언하자마자 열린 ‘환경규제개혁회의’에서는 환경 규제의 10%를 올해 안에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환경 규제가 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환경 규제가 엄격하기로 이름난 독일은 광활한 원시 자연만 남아있어야 해요.” 염 연구원은 환경 문제로 인한 갈등은 규제가 약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규제가 강하면 오히려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적다. 독일은 재산권 보호가 철저해 마을의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새로운 개발사업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주민들의 동의는 형식적으로 받고 삽질부터 합니다. 그러다 주민들의 반대에 직면하고 공사는 중단되고,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거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지, 지금 있는 규제를 없애는 게 아닙니다.”

독일은 ‘비싼’ 전기료로도 유명하다. 독일에서 사는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하는 것이 이 높은 전기료를 인식하고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염 연구원은 이를 전기료 ‘현실화’라고 설명했다. 또 산업용 전기를 싸게 공급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정책은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데, 기업에 끌려 다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모터를 많이 쓰는 산업체에 에너지 고효율 모터로 바꾸도록 지시하고, 정해진 기간 동안 시행이 안 될 경우 제재를 가합니다. 대신 기업이 새로운 모터로 교체할 때는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지원책을 동시에 시행해요.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되는거죠.”

그는 시민들에게 우리나라의 에너지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서 여과 없이 밝히고. 한국 상황에 맞는 새로운 에너지 정책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은 1인당 에너지 소비가 점차 줄어드는 시나리오로 정책을 짜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갈수록 에너지 소비가 늘 것으로 전망하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새로운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염 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계속해서 원자력발전소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특정 세력의 이득을 맞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독일 메르켈 총리가 2011년 5월 탈핵 선언 당시 남긴 한 마디를 소개했다. “후쿠시마 사고가 지금까지의 내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우리에게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글 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heyday11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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