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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외도로 낳은 아이, 법적 아버지는 누구일까?

등록 2014-07-18 11:47수정 2014-07-18 13:45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통해 ‘진정한 아버지다움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프리비젼 제공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통해 ‘진정한 아버지다움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프리비젼 제공
일 대법원 “혈연 없더라도 법적 부자관계 우선”
혼외관계로 낳은 아이 ‘법적 관계’ 끊을 수 없어
패소한 부인 “아이가 평생 불안정 요소 얻게돼”
‘부자 관계를 판단할 때, 법적인 관계가 우선일까, 생물학적인 관계가 우선일까.’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됐던 이 질문에 대해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결론을 내렸다. 실제 ‘혈연 관계’가 없더라도, 현재 맺어진 부자 관계를 끊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17일 일본 열도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사연을 정리하면 이렇다.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 사는 한 남성에겐 결혼한 지 10년이 된 부인이 있었다. 2009년 어느 날 부인이 갑자기 집을 나갔다. 부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남편은 그가 현재 딸을 낳고 산부인과에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병실을 방문한 남편에게 부인은 울며 “당신의 아이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자는 아이를 자신의 딸로 받아들이고, 아이의 이름을 직접 붙이고 육아도 성심껏 도왔다.

그러나 부부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파탄 난 뒤였다. 크고 작은 다툼을 이기지 못한 둘은 이듬해 협의 이혼을 결심한다. 이혼 전날 1년 3개월 된 딸은 남자에게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렀다.

이혼한 부인은 아이와 함께 집을 나가 아이의 생물학적인 남편과 재혼한다. 그리고 남편을 상대로 딸과의 부녀 관계를 해소해 줄 것을 요구했다. 남편은 17일 일본 최고재판소 앞에서 이뤄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를 포기하려 했지만 납득이 되지 않았다”며 부인과 법정 다툼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입을 열었다.

남은 길은 소송밖에 없었다. 1~2심에선 부인이 승리했다. 딸과 재혼한 남성의 디엔에이(DNA) 검사 결과 “부녀 관계일 확률이 99.9% 이상”이라는 과학적 사실이 인정된 결과였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17일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고 “생물학적으로 부자 관계가 아니라는 게 과학적으로 명백히 확인되더라도 법적인 관계를 해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부인이 결혼 중에 임신해 낳은 아들은 남편의 아이로 보는 민법상의 ‘적출추정’(嫡出推定)의 원칙을 디엔에이(DNA) 감정이라는 과학적 결론보다 우선한 판결이라고 해석했다. 일본 민법의 적출추정의 원칙이란 ‘결혼한 뒤 200일 이후에 낳은 아이나, 이혼이나 사별 뒤 300일 안에 태어난 아이는 결혼 중 부부 사이에 출생한 아이로 추정한다’는 민법 77조의 규정을 뜻한다.

재판부의 의견은 3대 2로 갈렸다. 사쿠라이 류코(여성) 대법관 등 3명은 “현행 민법이 법률상의 부자 관계와 생물학적인 부자 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남편의 손을 들었다. 그러나 시라키 유 대법관 등 2명은 “동거하고 있는 생물학적 아버지와의 관계가 안정되고 영속적”이라는 이유로 이에 반대했다. 현실을 인정하자는 소수 의견을 법적 안정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이 내리 누른 셈이다.

그러나 5명의 대법관 가운데 4명은 현재 민법 해석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본 언론들도 “메이지 시대인 1898년 만들어진 민법 조항이 달라진 현재 사회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 개정을 촉구하는 사설을 일제히 게재했다.

<도쿄신문>은 일본에서 디엔에이 감정 결과를 이유로 들어 부자 관계를 해소해줄 것을 요구하는 재판이 매년 1000건 이상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대다수는 합의를 통해 분쟁을 해소하고 있지만, 이번 사연처럼 재판까지 가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판도 삿포로 등 3건의 재판을 하나로 병합 심의해 결론을 낸 것이다.

패소한 부인의 변호사는 “아이가 평생 혈연 관계도 없는 남성과 부녀 관계를 강제 받아 법적, 심리적으로 많은 불안정 요소를 안으며 살게 됐다”고 우려했다. 승소한 남편은 “다시 아이를 만나 이름을 부르고 싶다”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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