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프랑스의 르펜 일가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극우’가 아니라 ‘우파 포퓰리스트’라고 불러야 한다. 이들은 인종주의와 스킨헤드로 상징되는 극우의 혐오스런 모습을 벗어버렸다. 대신, ‘문화차별주의’와 ‘포토제닉한 대중스타’로 포장한다.
프랑스 국민전선(FN)은 창시자인 공수부대 출신의 고집스런 노인 장마리 르펜을 축출했다. 딸 마린 르펜과 더 우아한 손녀 마리옹 마레샬르펜이 전면에 나섰다. 아버지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역사의 사소한 부분’이라며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를 표방했다. 반면 딸과 손녀는 ‘이슬람이 프랑스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문화차별주의를 말한다. 마린과 마리옹은 ‘유럽 문화와 무슬림 문화는 다르며, 무슬림들이 서구 가치를 따르기 원치 않고 내분을 일으키므로, 그들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슬림에 대한 반대를 인종주의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문화 탓’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과 무슬림들이 미국을 파괴한다고 떠든다. 그 역시 인종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멕시코 이민자와 무슬림들은 태어나고 배운 문화가 미국의 기독교적, 서구적 가치와 융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특히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이제 큐클럭스클랜(KKK) 같은 백인우월주의 세력의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
문제는 이들과 기성 우파의 차이가 희박해지고 있다는 거다. 프랑스의 중도우파 공화당을 이끄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달 25일 유세에서 “다문화 사회에서는 프랑스의 정체성이란 없다”며 프랑스와 서구 사회의 취약점은 ‘다문화’가 불렀다고 주장했다. 본질에서 르펜 일가와 차이가 없는 주장이다. 그는 이미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도 ‘프랑스 다문화 정책의 실패’를 주장했다.
막말을 하는 트럼프의 대안으로 부상하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부인할 수 없는 단순한 사실은 폭력 범죄자의 압도적 다수가 민주당 지지자”라며 민주당이 범죄에 온건한 이유는 그 흉악범들이 민주당에 투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국세청의 철폐와 단일 세율, 불법이민자 구제 반대를 주장한다. 정견의 내용에서는 트럼프보다도 더 극우이다.
마린, 마리옹, 트럼프, 사르코지, 크루즈 모두는 배제와 차별을 자신들 정치의 중심축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마린과 마리옹, 트럼프는 거침없이 말한다는 거고, 사르코지와 크루즈는 가식적으로 말한다는 거다. 이미 내용적으로 우파 포퓰리즘과 별 차이가 없어지는 서구의 기성 우파들은 대중들이 열광하는 마린 일가와 트럼프의 ‘솔직함’도 곧 따라할 것이다. 르펜 일가와 트럼프의 집권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나지 않겠지만, 이미 이들의 주장은 공화당 등 기성 우파들이 흡수하고 있다. 내용적인 대리 집권이 현실화됐다고 봐야 한다.
배제와 차별을 정치의 중심축으로 한다는 데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차이가 있나? 자신을 반대하는 시위대를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이슬람국가를 막는다는 테러방지법 입안을 다그친다. ‘국가비상사태’라고 노동법의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요구한다.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악마로 만드는 배제와 차별의 공포마케팅은 포토제닉한 한복 등 의상을 현란히 바꿔 입고 나타나는 그의 패션마케팅과 동시에 이뤄진다. 포토제닉한 우아한 모습으로 거침없이 차별과 배제를 주장하는 르펜 일가 여인들의 모습이 그와 겹쳐진다.
정의길 국제에디터석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 국제에디터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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