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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와다 “일본 정부 책임 인정” -요시미 “위안부문제 봉인 용납안돼”

등록 2016-12-27 21:38수정 2016-12-27 23:55

[한-일 12·28 합의 1년] 상반된 의견 보이는 두 일본학자 인터뷰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해온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이 둘의 균열은 일본 진보진영 안에서도 12·28 위안부 합의를 대하는 입장이 첨예하게 갈라져 있음을 보여준다.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는 일본 내 ‘위안부’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1992년 1월 위안부 제도를 만드는 데 일본군과 정부가 깊숙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문서를 처음 발굴해 이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군의 관여와 모집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를 발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요시미 교수는 새로 들어설 한국 정부가 지난 12·28 합의가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기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 것인지 명확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

요시미 요시아키 “고노담화서 후퇴…위안부문제 봉인 용납안돼”

-12·28 합의 이후 1년이 지났다. 현재 일본의 분위기는?

“이번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정리가 됐다고 생각하는 지도자가 많다. 남은 문제는 주한 일본대사간 앞에 있는 평화비(소녀상)를 철거하는 문제라는, 매우 도착된 생각이 일본 정계나 언론에 퍼져 있다. 결국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것으로 끝내려는 사회 분위기가 매우 강하다.”

-1992년 1월 문서 발굴 이후 지난 25년을 돌아보면?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행한 여러 전쟁범죄, 전쟁책임에 관련된 문제에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제대로 된 인식이 없었다. 그 속에서 연구자나 시민운동가들이 노력을 통해 여러 문제를 발굴해왔다. 그 가운데 위안부 문제가 하나의 큰 테마가 됐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실명을 공개하며 기자회견을 했을 때 일본 사회에도 ‘위안부 문제는 역시 용서할 수 없는 잘못된 것’이라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민간 업자가 한 것으로 군과 정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처음 위안부 문제의 쟁점은 일본군과 정부가 어느 정도 관련됐는지였다. 나는 관련성을 보여주는 문서 6점을 발굴해 이를 <아사히신문>을 통해 공개했다.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은 상식적이고 리버럴한 내각이어서 군과 정부의 관여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사죄했다. 거기까지는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했다. 그러나 이후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우익을 중심으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군이 직접 폭력적으로 연행을 하지 않았으면 모든 게 허용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전개했다. 이 문제는 이후 유엔(UN) 인권위원회 등에서도 다뤄져, 국제사회는 위안부 제도는 성 노예제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일본에선 ‘군에 의한 강제연행이 있었는지’ 여부에만 문제제기를 했다. 국제 사회와 불일치가 발생한 것이다. 아베 총리가 (강제연행이 없다면 일본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해 온 중심 인물이다.”

-그러나 12·28 합의에 대해선 이전보다 진전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 주장이 있지만 이번 합의는 이전 고노 담화에서 더 후퇴한 것이다. 고노 담화는 역사교육 등 재발방지 조처를 약속했지만 이번 합의엔 이게 완전히 빠져 있다. 고노 담화는 또 ‘사실 인식’ 부분에서 모호한 부분도 있지만 ‘여성들이 강제적으로 고통스런 상황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 점도 이번 합의에선 좀 더 모호해졌다. 돈의 문제에 대해선 ‘배상금’이 아니라는 점을 (일본 정부가) 분명히 하고 있으니, 진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위안부 문제를 봉인하려는 것이다. 이는 분명한 후퇴다. 위안부 문제는 두번 다시 화제로 삼지 않는다, 이것으로 끝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합의를 너무 서둘렀다는 점이 화근이다. 박근혜 정권이 너무 양보를 했다. 거의 아무런 성과도 없는데 합의를 했다.”

-한국 정부의 향후 대응에 대해 일본이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는데.

“실제적인 정치 과정에서 한국이 이 합의를 파기하면 분명 냉엄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제적인 표준이 확립돼 있다. 한국 정부가 이 합의는 여기서 이렇게 거리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면 어떨까 한다. 즉, 사실 인정을 분명히 해야 하고, 그에 기초한 명확한 사죄를 해야 한다. 사죄는 (아베 총리처럼) 한국의 대통령에게 전화로 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기초해 좀 어렵긴 하지만 위로금이 아닌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 그리고 재발방지 조처를 해야 한다. 재발방지 조처에는 교육을 통해 제대로 가르치는 게 포함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소녀상을 철거하는 게 아니라 추도를 할 수 있는 기념물을 만들어야 한다.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일본 주류의 생각은 완전히 꺼꾸로 뒤집혀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 당사자의 의사다. 이번 합의를 수용해서 일본 정부의 돈을 받는다는 분들이 있으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 누구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아베 정권 아래선 힘들지 않을까.

“아베 정권 아래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의 문제이다.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자기 점검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해온 학자로 꼽힌다. 와다 명예교수의 기본적인 입장은 현실 가능한 영역에서 대안을 찾는 현실주의다. 와다 명예교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간 12·28 합의에 대해서도 합의를 무효화하기보다 이 합의의 정신을 살려 한국의 새 대통령이 위령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역사적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 “일본 정부 책임 인정…위령비 세워 매듭을”

-12·28 합의가 이뤄진 지 1년이 지났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이 만들어졌을 때 한국의 피해자들과 운동단체는 반대했다. 정부가 사죄를 했으면서도 속죄금에 정부 돈을 내지 않고 국민 모금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이를 받아들인 한국 피해자들은 60명밖에 없었다. 한국에 대한 사죄·속죄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후 한국의 정대협 등 운동단체가 20여년 동안 1300회 이상 수요집회를 했다. 이후 2011년 8월 한국의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와 한국 정부가 일본과 새로운 교섭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아베 신조 총리와 정상회담도 하지 않고 일본도 방문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베 총리로부터 추가적인 조처를 이끌어 냈다. 20여년에 걸친 한국의 운동과 박 대통령의 압박으로 합의가 가능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모두 중요하다.”

-지난 합의의 성과는 뭐로 보나.

“하나는 아베 총리의 사죄다. 한국의 운동단체가 요구한 것처럼 위안부 제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사실 인정’에 대한 부분은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입장은 위안부 제도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뒤집으면 본심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합의엔 ‘도의적’인 말을 빼고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두번째, 이번엔 정부 예산에서 10억엔을 거출해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위한 사업에 쓰게 됐다. 이 두 가지는 분명 전진이다.”

-아베 총리는 사죄 편지 등 보완 조처는 거부했는데.

“합의가 나온 뒤 사죄가 담긴 편지에 아베 총리가 서명을 해서 이것을 일본의 외교 대표자인 주한 일본대사가 피해자들에게 전하는 조처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난 3월 무라야마 총리와 함께 기시다 후미오 외상에게 이 같은 뜻을 전했다. 그러나 기시다 외상은 반응하지 않았고, 아베 총리는 ‘털끝 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매우 안타깝지만 이 국면에서는 (합의를) 개량할 수 없게 됐다. 이것은 추후 과제다.”

-이번 합의에는 고노 담화에 담긴 역사교육 등 후속 조처가 빠져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베 총리는 고노 담화를 수정하고 싶다는 주장을 해서 2번째로 총리가 됐다. 그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담화를 부정하고 싶은) 자신의 신념이 있지만, 일본의 총리대신으로 담화를 계승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 이후에도 추가 조처를 취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조처를 검토했다.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으로 인해, 일본 우익 입장에서도 일본 총리의 사죄는 지울 수 없게 됐다. 아베 총리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교육을 하라는 것은 무리다. 그러면 역으로 교육에 아베 총리의 이데올로기가 들어간다. 그래서 아베 총리는 사죄만 하면 되는 것이고, 이에 기초해 역사 속에서 이를 어떻게 살려갈지는 우리가 생각하면 된다.”

-차기 한국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한국의 촛불집회를 보고 많은 일본인들이 감명을 받았고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새 대통령이 나오게 된다. 새 대통령이 12·28 합의를 없앤다고 하면 한국의 엄청난 국민적인 힘이 일본을 겨냥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는 좋지 않다. 위안부 문제는 그동안의 경과가 있던 것이고, 박 대통령의 거의 유일한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지역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주변국과 관계를 추진해야 한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합의의 정신을 살려) 위령비를 만들고, 그 안에 위안부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새긴 뒤 이를 세계로 확산해 가겠다는 뜻을 표명하면 된다. 이것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하나의 역사적 매듭을 짓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여기엔 일본 정부도 협력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대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계승했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한국의 촛불집회로 일본에서 소녀상 철거에 대한 주장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다.”

-위령비는 어디에 세우나?

“한국이다. 일본에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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