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피살 사건 용의자로 북한 국적 남성 4명을 지목했지만, 이들은 북한으로 이미 돌아간 것으로 보여 향후 수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현지신문인 <더 스타> 등 외신들은 20일 이번 범행의 핵심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리지현(32), 홍송학(34), 오종길(55), 리재남(57) 등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이 김정남 피살 당일인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에서 출국해 지난 17일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오전 9시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터미널 로비에서 김정남이 여성 피의자 2명으로부터 공격받은 직후 말레이시아에서 출국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경유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흘만인 17일께 평양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들의 출국 과정을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경찰 발표를 보면, 앞서 이들은 김정남이 마카오에서 말레이시아로 입국한 지난 6일을 전후한 1월31일부터 2월7일 사이 각각 말레이시아로 입국했다. 이로 미뤄 이들은 김정남의 출입국 일정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신병을 확보한 용의자인 베트남 여성 도안티흐엉(29)과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25),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체류하고 있던 북한 국적 리정철(47) 등은 정황상 사건을 지휘한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리정철은 경찰에 “(김정남) 암살에 가담하지 않았고, 공항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에 나온 용의자들 중에도 나는 없다”며 “여성 용의자들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레이시아 중국어매체 <중국보>가 보도했다.
경찰은 이밖에 또다른 용의자로 북한 국적자인 리지우(30)와 북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신원미상 2명의 남성도 쫓고 있다. 이들이 말레이시아에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들을 붙잡는다면, 사건 실체에 조금 더 접근할 가능성도 있지만, 결국 평양으로 돌아간 듯 보이는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에 대한 조사 없이는 규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인터폴과 협력해 행방을 쫓겠다고 했지만, 북한은 인터폴에 가입하지 않았고, 말레이시아와의 범죄인인도협정도 체결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말레이시아가 북한에 용의자 신병 인도를 요청하더라도 북한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부검, 시신 인도 문제 등으로 말레이시아 정부와 마찰을 빚어왔고, 19일 경찰 수사결과 발표도 전면부인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김정남 살해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북한 국적자 4명이 17일 평양에 도착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 외교부 관계자는 “권한대행이 (사건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게 확실해 보인다는) 메시지를 그 정도 확인없이 발표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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