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9일 첫 출근을 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우리는 2003~2004년 리비아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다.”(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이란 핵협정 파기는 (북한에) 올바른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남북이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북-미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비핵화를 실현해 낼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협상의 한쪽 당사자인 미국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하다. 북핵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CVID)돼야 하며, 이를 위해선 ‘리비아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고, ‘이란 방식’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견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3월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단계적·동시적 조처’를 언급해 미국과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주고받기식 협상을 벌일 것임을 암시한 바 있다.
미국이 가장 선호하는 리비아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핵폐기 위한 선조처, 후 단계적 경제 제재 해제’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 정권은 2003년 12월 미국·영국과 비밀 교섭 끝에 1970년대부터 추진해 오던 핵개발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리비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수용하는 등 2005년 10월까지 핵·미사일 관련 시설·장비·연구자료 등을 모두 미국에 넘겨 핵 폐기를 완료했다. 미국은 그 대가로 경제 제재를 차례로 해제하고, 2006년 5월 국교를 정상화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9일 <폭스 뉴스> 등과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 “리비아는 모든 핵 관련 시설에서 미국과 영국의 사찰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리비아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북한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며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인정했다. 볼턴 보좌관은 리비아의 핵 폐기 당시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으로 있으며 이 작업을 담당했다.
무아마르 가다피(오른쪽) 리비아 대통령이 2008년 4월 트리폴리를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그러나 핵개발을 완성하지 못한 리비아에 적용한 방식을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이뤄냈다고 주장하는 북한에 적용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북한 역시 여러 차례 리비아 방식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견줘,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해온 이란 방식의 핵심은 이란의 핵활동을 10~15년 ‘한시적으로 제한’한 것이다. 이란은 2015년 7월 미국 등 6개국과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과 무기급 플루토늄을 15년 동안 생산하지 않고, 10t이었던 농축 우라늄을 300㎏으로 줄이며, 1만9000개였던 원심분리기 수를 10년 동안 6104기로 유지하는 것을 뼈대로 한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 서명했다. 미국 등은 그 대가로 금융 제재와 이란산 원유 거래 제한을 해제했다.
이 협정의 단점으로 꼽히는 것은 핵활동 동결 기간을 10~15년으로 정한 ‘일몰 조항’이다. 이란 방식은 핵활동을 ‘동결’하는 것이기에 북한이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와 거리가 멀다.
이런 가운데 북핵 문제를 현실적으로 풀 수 있는 합리적 대안으로 주목 받는 게 ‘우크라이나 방식’이다. 이 방식의 특징은 ‘선 체제 보장, 후 핵 폐기’다.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영토 내엔 1200여개의 핵탄두가 남아 있었다. 미국·러시아·영국 등은 1994년 12월 ‘부다페스트 각서’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고 이를 러시아에 넘기면 독립·주권·영토를 보장하고,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일체의 무력 행사나 위협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고, 96년 6월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겨 비핵화를 완료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영토이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며 약속을 저버렸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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