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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핵 둘러싼 북-미 70년 대결사, 이제 마침표 찍을까

등록 2018-05-13 19:22수정 2018-05-13 21:52

70여년 이어진 북-미 대립의 핵심에는 핵 문제
냉전 끝났어도 핵 공포와 체제 우려가 북 핵개발로
한반도 냉전 종식, 클린턴 정부 때 기회 있었지만 놓쳐
※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1일(현지시각) “미국은 북한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면서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과감한 조처’였다. 그의 이 발언은 ‘핵 문제’가 지난 70여년간 이어진 북-미 대립의 본질임을 압축해 보여준다.

북한의 ‘핵 공포’가 시작된 것은 한국전쟁 때부터였다.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1950년 말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북에 대한 전면 핵공격은 물론, “북-중 국경에 30~50개의 원폭을 투하해 코발트 방사능 오염지대를 만들자”고 했다. 실제 핵공격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떨어뜨린 미군 B-29의 끊임없는 공습은 북한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미국은 1957년 한국에 핵탄두를 처음 배치했고, 1972년 그 수는 763개로 늘었다. 북한은 1950년대 후반부터 소련에 핵기술 이전을 요구했다.

북-미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은 핵 위협을 가했다. 첫 예는 1968년 1월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었다. 북한이 원산 앞바다에서 정보 수집활동을 벌이던 이 배를 나포하자, 미국은 전략폭격기 B-52로 핵공격을 가하는 ‘프리덤 드롭’ 작전을 검토했다. 결국 당시 진행 중이던 베트남전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영해 침입을 인정하며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1976년엔 8월에는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군은 공동경비구역(JSA)내에서 미루나무를 절단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했다. 미국은 다시 핵공격이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했다. 미국이 사건 사흘 뒤인 8월21일 재차 병력을 투입해 나무를 잘라내는 동안 하늘엔 B-52 폭격기, 해상에는 항공모함이 배치됐다. 한반도 전문기자 돈 오버도퍼는 저서 <두 개의 한국>에서 “극히 제한된 이 소규모 부대를 뒤에서 지원하는 병력은 3차 세계대전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고 했다.

1990년 냉전이 끝나며 한반도에도 훈풍이 불었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1991년 9월 전세계 미군기지에서 “지상과 해상의 전술핵을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즉각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어디에도 핵무기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고, 12월31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나왔다.

북한도 이 흐름에 따라 1992년 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안전조치 협정에 서명했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가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반발로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미국은 당시 북한 핵시설이 몰려있는 평안북도 영변에 대한 타격을 검토했지만, 개전 초기 3개월 만에 ‘사상자 미군 5만명, 한국군 49만명, 민간인 100만명 이상’의 피해가 날 것이라는 예측에 포기했다. 결국 선택지는 대화밖에 없었다. 북-미는 1994년 10월 미국 등이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해 주고, 북한은 핵 동결을 한다는 제네바합의를 했다. 미국은 이후 1999년 10월 북한에 대한 포용 정책을 담은 ‘페리 보고서’를 내놨다.

이후 북-미는 역사적 화해를 시도했다. 2000년 7월 말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사상 첫 북-미 외교장관 회담이 열렸다. 이후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10월10일 미국을 방문해 군복을 입고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북-미는 이튿날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답방했다.

안타깝게도 도전은 거기까지였다. 네오콘에 둘러싸인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연두교서에서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이라 선언하고,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핵개발을 하고 있다며 제네바합의를 내던졌다. 북한은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에서 다시 탈퇴했다. 한국 등은 2003년 시작된 6자회담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를 내세워 북과 대화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북핵 능력은 고도화됐다. 지금까지 6번 핵실험을 했고, 2017년 11월 워싱턴을 노릴 수 있는 화성-15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핵을 놓고 벌인 북-미의 수십 년 갈등이 다음달 12일 첫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기회를 통해 완전한 해결의 길로 접어들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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