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를 만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주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정상들에게 “더 많은 국방비를 부담하라”고 압박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서양 동맹’ 사이에 살벌한 ‘무역 전쟁’이 시작된 가운데 전후 70년 가까이 세계 질서를 유지해온 나토에도 커다란 균열이 예상된다.
<뉴욕 타임스>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독일·벨기에·노르웨이·캐나다 등 몇몇 나토 정상들에게 ‘날카로운 언어’가 포함된 서한을 보내 그들이 국방비를 너무 적게 쓰고 있다고 지적하고, 미국이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음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로 인해 11~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의가 지난달 8~9일 캐나다 퀘벡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처럼 파행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의를 앞두고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 주요 동맹국들에 ‘관세 폭탄’을 쏟아부은 데 이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막말을 퍼부으며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서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서한에서 주요 표적으로 삼은 이는 껄끄러운 사이인 메르켈 총리다. 그는 메르켈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당신이 4월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토론했듯, 미국 내에서는 일부 동맹이 약속한 것처럼 (충분한 국방비 부담을 지기 위해) 나서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며 “독일 등 대륙(유럽)의 경제가 잘나가고, 안보 위협이 많은 상황에서 미국이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못박았다. 이어 이런 불만이 “미국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에도 퍼지고 있다”고 했다.
나토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사태’ 뒤인 2014년 9월 영국 웨일스에 모여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북아프리카·중동의 불안정한 정세 등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10년 이내’에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나토의 2017년 자료를 보면, 국내총생산 대비 미국의 국방비 지출이 3.57%인 데 견줘 독일은 1.24%, 이탈리아는 1.12%, 캐나다는 1.29%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나토 회원국들이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려는 것이 독일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은 지속적으로 국방비 지출을 덜 하고 있다. 이는 동맹의 안전을 해칠 뿐 아니라 다른 동맹들에 약속한 국방비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독일을 롤모델로 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해 5월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다른 회원국들에 “방위비를 더 내라”고 요구하며 다른 정상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동을 단순한 ‘엄포’나 ‘기행’으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트럼프발 ‘무역 전쟁’이 시작된 상황이어서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 대통령들은 오랫동안 나토 회원국들이 부담을 공유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터뜨려왔지만 트럼프의 비판은 훨씬 더 나간 것”이라며 “그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들이 나토에 빚을 갚지 못하는 게으름뱅이라고 비난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로 인해 세계 질서를 유지해온 ‘자유무역’과 ‘안보’라는 두 개의 큰 축 모두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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