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빙 사이를 뛰어다니는 북극곰의 모습. 북극곰은 수천 년 동안 유빙으로 올라오는 물범을 사냥하면서 살아왔지만, 기후변화로 유빙이 줄어들면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위키피디아
야생 북극곰이 관광객들을 태운 크루즈 유람선의 직원을 공격했다가 사살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해당 관광업체에 세계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북극 관광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통해 온난화로 달라진 북극 야생동물들의 서식 환경이 단적으로 드러났다고 경고하고 있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고가 북극 관광을 계속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환경 매체 ’에코워치’의 기사. 트위터 갈무리.
문제의 크루즈선 ‘브레멘호’는 지난 28일, 관광객 155명을 태운 채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 내 스피츠베르겐 섬에 정박했다. 북극과 노르웨이 중간에 있는 스발바르 제도는 육지 대부분이 빙설로 덮여있는 대표적인 북극곰 서식지다. 이곳은 북극 관광 크루즈선의 주요 목적지 가운데 하나인데, 이 지역 인구를 웃도는 약 3000여 마리의 북극곰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브레멘호를 운영하는 독일의 크루즈 관광업체 하팍로이드 사는 28일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승객들이 내리기 전 북극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목적으로 안전요원 4인조 팀이 먼저 배에서 내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이 근처에 있던 북극곰 한 마리를 미처 보지 못한 채 머리를 공격당했고, 다른 직원들이 북극곰을 떼어내려다 실패해 정당방위로 사살했다는 해명도 함께 올렸다. 다친 직원은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으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도 전했다.
여름은 북극 크루즈 관광 성수기다. <에이피>
(AP)에 따르면, 이번 주에 스발바르 제도로 출항이 예정된 크루즈 유람선은 모두 18척이다. 스발바르 제도에서 북극곰이 사람과 접촉한 뒤 사살된 일이 보고된 사례는 지난 40년 동안 약 5번 정도 있었던 것으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가장 최근 있었던 일은 2011년이었다.
그린란드해와 바렌츠해 사이 위쪽의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스발바르 제도. 구글 지도 갈무리.
사실 크루즈 관광객들이 섬에 잠시 내리는 관광이 예외적인 일은 아니다. 하팍로이드는
누리집에서 “여름철에는 북극곰이 섬에 많이 출몰하므로 엄격한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 사진이 공개되면서, 전 세계 누리꾼들로부터 야생동물의 서식지에 ‘일부러 침입한’ 데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업체 쪽의 해명 글에도 “수치스럽다”, “북극곰이 위험한 동물인지 몰랐느냐”, “총으로 동물을 쏘아죽인 것을 ‘사고’라고 불러선 안 된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달렸다.
전문가들은 북극곰 서식지에 사람들이 내리는 여행 방식의 문제 이전에, 기후변화가 북극곰의 서식지를 점점 좁게 만들고 있어서 야생동물들이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 이번 일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바다를 떠다니는 유빙이 줄어들면서 이동의 폭이 좁아진 북극곰은 과거보다 더 좁은 지역에서 더 적은 먹이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남아있는 북극곰 개체 수는 약 2만6000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스발바르 제도에서 관광 크루즈 직원에 의해 사살된 북극곰. NTB Scanpix via AP/연합뉴스
전문가들이 이렇게 지적하는 이유는 지난 4일에도 캐나다에서 유사한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와 가까운 캐나다 북부 허드슨 베이를 여행 중이던 30대 남성이 야생 북극곰과 마주쳤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남성을 공격한 북극곰 역시 일행에 사살됐다. 해당 지역은 낚시와 사냥이 허가된 관광지로, 2500여명의 주민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캐나다공영방송>(CBC)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북극곰이 사람을 치명적으로 공격한 것은 18년 만의 일이었다.
세계자연기금(WWF) 소속 생물학자이자 환경보호가 시빌레 클레젠도프는 <전미방송>
(NBC)에, “관광객들뿐 아니라 인근에 사는 주민들, 인근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북극곰과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극 지역에 머무는 사람들이 북극곰과 마주치는 일은 앞으로 또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미리 구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클레젠도프는 북극의 독특한 환경에서는 경험 많은 전문가들도 북극곰을 맨눈으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에, 애초에 서식지에 다가가는 것 자체를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수진 기자
sujean.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