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9일 러시아와 시리아 공군기들이 반군의 거점인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주와 하마주에 대한 공습을 재개한 직후 이들립 남부 호바이트 마을이 크게 부서져 현지 민방위대 ‘하얀헬멧’ 대원들이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분쟁 개입 축소’라는 자신의 대외정책을 본격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 이제 그 기로에 서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 시각)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20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감축 고려를 발표했다. 이에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사임을 밝히는 등 워싱턴에서 기존 외교안보 엘리트들의 반발이 절정에 오르고 있다. 시리아 철군을 순조롭게 완수할 수 있느냐가 첫 시금석이다. 반대론자들은 철군이 시리아에서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을 키우고,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한 쿠르드족 민병대 세력을 터키의 군사위협에 노출시키고, 결국 이슬람국가를 부활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의회에서 트럼프의 최대 지지자인 그레이엄 의원 등 정치권뿐만 아니라 조지프 보텔 중부군 사령관, 브렛 맥거크 대이슬람국가동맹 미국 대사 등은 2011년 오바마 행정부의 이라크 철군이 세력 공백을 불러서 이슬람국가를 부상시켰다며, 이번 결정이 당시의 상황을 재현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레이엄 의원은 “이라크 상황의 전면적 반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슬람국가 부상의 결정적 배경은 시리아 내전이었다. 이라크에서 겨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 시리아 내전 상황을 이용해 이슬람국가로 거듭났다. 그 시리아 내전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 수니파 아랍국가들이 이란과 연대하는 바샤르 아사드 정부를 타도하려고 개입하면서 악화됐다. 사우디 등의 반아사드 반군에 대한 지원이 알케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에까지 확대돼 결국 이슬람국가가 탄생했다.
2014년 이슬람국가 탄생 이후 그 격퇴는 크게 두 가지 갈래에서 이뤄졌다.
첫째는 오바마 행정부가 고수한 반이슬람국가 현지 세력 양성이다.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민병대 세력을 주축으로 한 시리아민주군(SDF)이 그 역할을 맡았다. 미군은 시리아민주군을 지원·양성하는 한편 터키나 카타르에서 발진하는 공군력으로 이슬람국가 격퇴 작전을 도왔다. 트럼프가 철군을 결정한 2천명의 특수군 병력은 이슬람국가와의 직접 전투가 아니라 시리아민주군 지원·양성과 미 공군력 개입에 관여했다. 이 전략은 이슬람국가를 시리아 북부에서 구축하는 성공을 거뒀다.
둘째는 러시아의 개입과 그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의 회복이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 정부군은 중·서부에서 이슬람국가를 효과적으로 격퇴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또 친서방 반군세력 역시 중부 지역에서 패퇴시켰다. 그 결과 시리아는 현재 북부는 쿠르드족이, 나머지 지역에서는 정부군 세력이 양분하는 세력 구도로 재편됐다.
철군을 지지하는 쪽은 2천명의 미군 철수가 상황을 바꿀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미군 철군은 러시아와의 타협을 여는 길이 되며, 중동의 군사강국 터키의 역할을 미국 쪽으로 유리하게 확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리아에서 미군이 철군한다 해도, 중동에서 미 군사력은 여전하다. 그리고,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만 시리아 내전의 정치적 타결은 가능하다.
트럼프의 철군 결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쿠르드족 문제이다. 지난해부터 이슬람국가가 구축되면서, 터키는 세력이 확대되는 쿠르드족을 견제하려고 군사적 침공도 마다않고 있다. 시리아의 쿠르드족 세력이 커지면서 자국의 쿠르드족 분리독립과 연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미국은 터키와 쿠르드족 중 누구를 우선시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선택을 해야 하며, 그 선택은 터키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터키가 시리아 내 쿠르드족을 전면적으로 말살한다고 볼 수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터키는 시리아의 쿠르드 무장세력이 자국 내 쿠르드족과 연계하는 것을 분리·차단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주변의 모든 국가가 쿠르드족 독립국가 수립을 완강히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시리아 내 쿠르드족의 자치 확대가 유일한 해법이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30일 내로 철수를 완료하라며 구체적 일정과 후속 대처를 국방부에 명령했다고 한다. 매티스 장관의 사임이 말해주듯이 국방부 전체는 철군에 반대한다. 국방부를 독려하고, 워싱턴 외교안보 엘리트들의 저항을 뚫고 순조로운 철군 완료를 이룰지는 미지수이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대화의 표류는 트럼프 결정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워싱턴 내의 저항과 태업이 한몫을 하고 있다. 시리아 철군 결정 역시 비슷한 과정에 봉착할 것이 분명하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나서서 철군 철회 결의안을 주도하는 것은 그 반발과 저항의 강도를 짐작케 한다.
트럼프가 이런 저항을 뚫고 시리아 철군에 성공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그 성공 여부는 어쩌면 트럼프가 워싱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척도도 될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