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17일 발표한 ‘미사일방어 검토 보고서 2019’의 표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도화하는 중국·러시아의 미사일 공격 능력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1980년대에 폐기된 ‘스타워즈’ 계획을 다시 끄집어냈다.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린 위성의 센서로 적 미사일의 발사와 움직임을 재빨리 포착해 초기 발사 단계(boost phase)에서 레이저 등 위성 장착 무기로 조기에 파괴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국방부는 17일(현지시각) 미사일방어(MD)망 강화를 위해 우주 공간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미사일방어 검토 보고서 2019’를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맞춰 국방부를 방문해 미국의 목표는 “언제 어디서든 미국을 향해 발사되는 모든 미사일을 추적해 파괴하는 것”이라고 선언한 뒤, “(기존 탄도미사일뿐 아니라) 순항미사일과 초음속 미사일 등 모든 형태의 미사일 공격을 방어할 수 있게 태세를 전환하고, 향후 예산을 우주를 기반으로 한 미사일방어망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시스템은 적대국의 모든 미사일 발사를 관찰하고 파괴할 것이다. 미사일 형태가 무엇이든, 공격 원점의 지형이 어떻든 공중에서 바라본다면 지구상에 (미국 엠디망으로부터) 안전한 적의 미사일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위성에 레이저 등 공격 무기를 탑재해 미사일을 요격한다는 구상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3년 발표한 ‘철 지난’ 전략방위구상(SDI)을 떠올리게 한다. ‘스타워즈 계획’으로도 불린 이 구상은 1980년대 중반 미-소 간 대립을 더 첨예화시켰지만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고 기술적 난제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1993년 이 구상을 공식 폐기했다. 하지만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타격하기 전에 공중에서 파괴한다는 구상 자체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2002년 본격 구축하기 시작한 현재의 엠디 계획으로 계승됐다.
핵 군축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미국이 2010년 이후 9년 만에 새 엠디 전략을 발표한 것은 중·러의 미사일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돼 이미 엠디망이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최고 속도가 마하 20에 이르는 극초음속 미사일 시스템인 ‘아방가르드’(아반가르트)를 올해 내로 실전배치하겠다고 밝혔고, 중국도 여러 탄두를 동시에 탑재해 요격이 어려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41을 완성했다. 미국 국방부도 이번 보고서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매우 이례적인 속도로 비행하고 예측할 수 없는 궤적을 그리는 순항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 능력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현존 방어 시스템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며 엠디를 둘러싼 전략적 변화가 진행 중임을 시인했다.
문제는 이 계획의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다.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수년 안에 실용화할 기술을 갖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중·러가 다시 한번 이를 극복할 미사일 개발에 나설 것이 불 보듯 뻔해, 엠디를 둘러싼 ‘모순’(창과 방패)이라는 악순환을 끊어내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고서는 북한이 “수십년간 탄도미사일 계획에 상당한 자원을 투자하고 광범위한 핵실험을 실시해 미국 본토에 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워졌다”며, 이를 “매우 중대한 위협”이라고 명시했다. 또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핵 위협에 맞서려면 한-미-일의 ‘삼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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