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1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한-미 정상 단독회담을 할 때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배석한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매파 카드로 쓰는 단순한 꼬리인가, 아니면 트럼프라는 몸통을 흔드는 꼬리인가?
최근 미국의 항모전단이 페르시아만에 파견되고, 유사시 12만5천명에 달하는 미국 병력을 파견하는 군사계획안이 제출되는 등 중동에서 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이란 위기가 격화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볼턴 보좌관이 있다. 미국 대외정책 사상 최악의 재앙이라는 2003년 이라크전쟁을 주도하고 지금도 옹호하는 볼턴은 이란의 정권 교체를 위한 군사력 개입 등 모든 수단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란 위기 외에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권 붕괴를 노리는 베네수엘라 위기 고조, 그리고 북-미 관계를 원점으로 돌리고 있는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등은 미국 대외정책에서 볼턴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 대통령 중 미국의 해외 군사 개입에 가장 혐오를 보이고, 해외에 전개된 미 군사력의 축소와 철수를 주장해왔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시리아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발표하고 이를 반대하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사임까지 불사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정책 노선과는 달리 중동에서 다시 미 군사력을 증강해야 하는 부담을 줄 이란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이 때문에 페르시아만에서 전쟁 발발 수준으로까지 오르내리는 이란 위기가 격화되자 미국 대외정책의 키를 누가 잡고 있는지 논란이 커진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위기에서 노릴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자.
첫째, 중동의 핵심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배려이다. 두 나라 모두 이란과 숙적이며, 이란의 핵 개발과 중동에서의 영향력 확장을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둘째, 이란과의 새로운 핵협정 체결 압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이란과의 국제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이를 목표로 내세웠다. 셋째, 이란 정권 교체이다. 이란의 이슬람혁명 뒤 미국이 계속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이란 위기를 핑계로 이란에 대한 사상 최대 제재는 이란의 석유수출을 제로로까지 만들 수 있다. 이는 이란의 내부 붕괴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넷째, 예방전쟁이다. 이란이 핵 개발을 재개하면 이란의 핵시설 공습 등의 선제 군사개입을 할 명분이 생긴다. 다섯째, 이란 봉쇄 강화이다. 이라크전쟁 이후 중동에서 커지는 이란의 영향력을 차제에 차단하는 한편 더 나아가 축소하려는 목적이다. 군사력 증강에 덧붙여진 제재 강화는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에 퍼져 있는 친이란 세력에 대한 이란의 지원을 차단할 수 있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이런 다섯 가지 목표를 제시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위기 고조는 이란 봉쇄 강화로 귀결될 것으로 진단했다. 이란 봉쇄 강화는 결국 전쟁을 제외한 나머지 목표들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지난주부터 이란과의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고 있다.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도 미국의 대이란 태세는 “전쟁 억제이지 전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미 군사력의 해외 개입에는 혐오를 보이지만, 자신의 대외정책 의제를 관철하는 데 ‘최대한의 압력’ 전술을 구사해왔다. 그의 최대한의 압력 전술은 미국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바에야 판을 엎어버리겠다는 협박이다. 상대방이 백기 투항으로 협상에 나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볼턴은 그 도구라 할 수 있다.
트럼프 주변에서 볼턴이 돋보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트럼프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쓸 수 있는 가용자원의 부족에도 있다. 워싱턴의 기존 외교안보 엘리트들은 전통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에 대해 집단성명까지 내며 등을 돌렸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및 매티스 전 국방장관 등 트럼프가 기용했던 기존 주류 외교안보 인사들은 모두 도중하차했다.
트럼프에게 남은 자원들은 볼턴으로 상징되는 네오콘들이다. 이라크전쟁을 주도한 네오콘은 그 후 워싱턴에서 ‘폐족’으로 취급됐다. 대외정책에서 강경전술을 구사하는 공통분모도 있는 네오콘이 트럼프의 필요로 부활한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외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균형과 견제이다. 미국 외교안보의 삼각축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및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네오콘적인 매파이고,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은 뒷전에 머물고 있다. 전쟁을 원해서만 전쟁으로 가지 않는다. 전쟁을 위협하며 그런 상황을 조성하면 원치 않는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