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3일 이란 군부의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을 공습 살해한 뒤 전개되는 상황 대처에 오락가락하며 통제력을 잃은 모습이다. 솔레이마니 제거 결정에는 대이란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는 미 언론 보도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소수 측근의 전격적 결정으로 미국이 ‘중동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미 국방부는 6일(현지시각)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문제를 놓고 혼선을 빚었다. 이날 미군 이라크 태스크포스의 책임자인 윌리엄 실리 미 해병대 여단장은 이라크 연합작전사령부 사령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우리는 미군 철군을 지시하는 이라크의 주권적 결정을 존중한다”며 “미군은 나아가는 움직임을 준비하기 위해 재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군이 이라크 영토에서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데 “주권 침해”라며 격분한 이라크 의회와 정부의 철군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사실이 보도된 직후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라크 철군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에스퍼 장관은 “우리는 그 지역 전체에 걸쳐 병력을 재배치하고 있다”면서도 “(이라크에서) 떠날 결정은 없고, 떠날 계획이나 떠날 준비를 하는 어떤 계획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이 서한은 초안이었고 실수였으며, 서명된 것도 아니다. 그건 공개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라크에는 약 52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 지역 내 이슬람국가(IS) 부활의 길을 터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미군 철수라는 민감한 문제를 놓고 미 당국이 몇시간 사이에 ‘철수’와 ‘번복’을 오간 것이다.
이란의 문화유적을 공격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는 장관들이 나서서 ‘그런 뜻은 아니다’라며 진땀을 빼는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기자들이 이란 문화유적 공격 여부에 대해 묻자 “미국은 무력충돌법을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 문화유적을 공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그게 무력충돌법”이라고 답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 5일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화유적지를 공격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우리가 공격하는 모든 대상은 합법적인 타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이란이 솔레이마니 살해에 대응해 미국에 보복하면 이란 문화에 중요한 곳 등 52곳을 타격하겠다고 밝혀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불렀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이란의 사실상 핵협정 파기로 핵 위기까지 치닫는 가운데 미 정부 내 좌충우돌까지 뒤엉킨 셈이다.
이런 혼돈을 초래한 솔레이마니 살해 결정에는 폼페이오 장관의 영향이 작동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하원 의원, 중앙정보국(CIA) 국장, 국무장관을 지내면서 대이란 강경론을 펴온 매파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6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이 미국 무인기를 격추했을 때 군사적 보복을 추진하다 막판에 철회했을 때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난달 27일 이라크에서 미국인이 로켓포 공격으로 사망하자 이틀 뒤 에스퍼 장관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을 찾아가 솔레이마니 살해를 포함한 선택지들을 제시했다. 이 매체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솔레이마니 살해를 주장했으며, 미 육군사관학교 동기인 폼페이오 장관과 에스퍼 장관이 ‘의기투합’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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