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연합과 맺은 북아일랜드 관련 합의를 뒤집을 움직임을 보이면서 유럽연합과의 경제 관계 협상 결렬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상징하는 조형물.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경제 관계 협상이 어려움을 거듭하는 가운데 영국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북아일랜드 위상 문제를 다시 꺼내, 협상 결렬과 영국의 일방탈퇴(노딜 브렉시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영국 정부가 지난해 연말 유럽연합과 맺은 정치 관련 합의 중 북아일랜드 관련 부분을 깨는 내용의 ‘내부시장법’을 9일 공개할 것이라고 6일 보도했다. 보도 이후 협상 결렬 우려가 커지며 7일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했고 유럽 정계도 발칵 뒤짚혔다.
사이먼 코베니 아일랜드 외무장관은 이날 “이는 아주 현명하지 못한 행보”라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 발언이 “정신 나갔냐?”는 말을 외교적으로 포장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유럽연합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북아일랜드 관련 합의는 “국제법에 따른 의무이자 미래 협력 관계를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영국을 압박했다.
영국의 합의 번복 움직임은 경제 협상을 파국으로 몰아갈 ‘핵폭탄’과 같다. 두쪽은 10월 중으로 무역협정 합의안을 도출해 내년 1월부터 적용할 계획인데, 공정경쟁 방안과 북해 어업권 문제 등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협상이 깨지면 두쪽의 경제 관계는 대혼란에 빠진다. 자유롭게 넘나들던 물품들에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른 관세가 적용되며, 이는 일차적으로 엄청난 서류작업과 통관 지연을 초래하게 된다. 두쪽의 경제 관계 위축도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다시 꺼내든 북아일랜드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영국에 속한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계 주민과 영국계 주민의 갈등으로 수많은 폭력 사태를 겪었는데, 영국과 아일랜드가 1998년 4월10일 이른바 ‘성금요일 협정’(벨파스트 협정)을 맺으며 평화를 찾았다. 협정의 핵심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 국경을 없애고, 북아일랜드인에게 이중국적을 포함한 국적 선택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 협정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서 아주 난해한 문제를 유발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국경을 다시 설치하지 않으면서 유럽연합과 영국간 국경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뒷문’이 열린 채 경계를 정하는 셈이다. 두쪽이 찾은 해법은 북아일랜드를 유럽연합 단일시장에 잔류시키고, 북아일랜드와 영국 섬 사이의 무역에 대해 유럽연합의 관리 권한을 인정한 것이다.
영국 정부가 마련한 내부시장법안은 이런 합의 중 북아일랜드 관련 보조금 정책에 대한 유럽연합 통보 의무와 북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물품에 대한 통관 보고서 작성 의무를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보도했다.
영국이 법제화를 강행하면, 북아일랜드의 지위가 위태로워지고 유럽연합의 국경 통제에도 구멍이 뚫린다. 아일랜드는 물론 유럽연합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단순 협상 전략으로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이것이 협상 전술이라면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8일부터 영국 런던에서 8차 경제 협상을 진행할 미셸 바르니에 유럽연합쪽 협상 대표는 이에 대해 말을 아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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