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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전쟁 성폭력·표현의 자유”…베를린 소녀상 운명 바꾼 시민의 힘

등록 2020-10-14 15:37수정 2020-10-15 02:31

법원 심리기간 “철거 대신 타협”

인권 앞세운 시민단체 설득
“한일 과거사 넘어 보편적 인권 문제”
녹색당·여성단체 등 시위동참 주도
일본여성, 소녀상 앞 무릎꿇고 사죄도

소녀상 향후 처리 어떻게 되나
현지언론 연일 보도 관심 높아져
행정법원 가처분신청 판단에 촉각
‘성노예’ 등 비문내용 수정 타협 여지
13일(현지시각) 베를린시에서는 시민 200여명이 모여 소녀상 철거 결정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소녀상 건립을 주도한 단체들과 여성인권단체, 소수민족 단체들이 참가했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13일(현지시각) 베를린시에서는 시민 200여명이 모여 소녀상 철거 결정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소녀상 건립을 주도한 단체들과 여성인권단체, 소수민족 단체들이 참가했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행정법원이 평화의 소녀상 철거명령 효력 정지 여부를 결정할 동안) 우리는 이 복잡한 논쟁에 대한 모든 관련 활동가들의 주장을 원점에서 다시 심사숙고하겠다.”

13일 오후 2시(현지시각)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반대 시위현장에서, 지난 7일 소녀상 철거 명령을 내렸던 슈테판 폰 다셀 미테구청장이 예고에 없던 자유발언을 통해 타협 의지를 밝혔다. 독-한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의 철거명령 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철거가 보류된 기간 동안 해법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폰 다셀 구청장의 한마디에 시위 현장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폰 다셀 구청장은 “한국은 물론 일본도 만족할 수 있는 타협안이 있기를 바란다”며 ‘심사숙고’의 의미를 부연했다. 7일 철거명령 당시 미테구청 쪽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로 데려갔다’는 등의 비문 내용을 문제 삼은 만큼, 비문 수정 등 절충안을 찾게 되리란 관측이 나온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한겨레>에 “비문의 문구가 주요 쟁점이 될 것 같다”며 철거 철회를 위해 일부 문구는 수정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향후 협상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번 사태는 녹색당 등에서 소녀상 지지 세력을 형성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글렌데일 지역에서도 일본 극우단체의 압박에도 시장과 시의원들의 도움으로 소녀상 존치를 결정했던 사례가 있다.

미테구청이 소녀상 철거에서 재검토로 태도를 바꾸기까지, 평화의 소녀상 문제를 한-일 외교 문제나 반일 민족주의가 아닌 전쟁 성폭력과 표현의 자유 등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접근한 시민단체의 설득 전략이 주효했다. 독일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지역구와 베를린 시의회에서는 일본의 소녀상 철거 압력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판단한 뒤부터 여론이 급격히 철거 재검토 쪽으로 기울었다.

시위 전날인 12일 사회민주당 미테 지역위원회가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소녀상 철거 결정을 다시 검토하기 위한 공개토론회를 제안했다. 13일 시위 직전에는 베를린시 녹색당에서 녹색당 소속인 폰 다셀 구청장의 소녀상 철거 결정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됐다. 녹색당 소속 시의원 그룹 대변인 라우라 노이게바우어는 베를린-브란덴부르크의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폰 다셀 구청장의 결정은 녹색당의 가치를 잘못 전달했다. 녹색당은 예술의 자유를 옹호하며 강제 성노동 피해자와 연대한다”며 소녀상을 다시 허가할 것을 촉구했다. 녹색당 시의원 일부는 아예 시위에 동참했다.

아울러 베를린 시 연정을 구성한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이 소녀상을 지지하고 나선 것은 ‘소녀상은 전쟁 성폭력 범죄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영향도 크다. 베를린 소녀상은 건립 과정에서부터 반일이 아닌 반전, 반성폭력을 주제로 삼아 여성단체, 소수민족은 물론 일본 여성들의 참여까지 이끌어냈다.

13일(현지시각) 베를린에서 열린 소녀상 철거 철회 촉구 집회는 연대의 자리였다. 이날 시위에서 한 독일인이 소녀상 철거를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13일(현지시각) 베를린에서 열린 소녀상 철거 철회 촉구 집회는 연대의 자리였다. 이날 시위에서 한 독일인이 소녀상 철거를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13일 시위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엔 히로코 체어드리크 노진 등 일본 여성 3명이 참석해 소녀상 설립을 방해한 일본 정부의 행위에 분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일본인 마코토 다키타(50)는 이날 “일본군 성범죄 피해자에 사과드린다”며 소녀상 옆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일본군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커서 사과하지 않고는 마음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녹색당 소속 베를린 시의원 베네딕트 룩스는 이날 시위에 함께 참여해 시위 소식을 자신의 트위터로 알렸다. 베네딕트 룩스 시의원 트위터 갈무리
녹색당 소속 베를린 시의원 베네딕트 룩스는 이날 시위에 함께 참여해 시위 소식을 자신의 트위터로 알렸다. 베네딕트 룩스 시의원 트위터 갈무리

철거 시한인 14일을 하루 앞두고 기사회생한 소녀상에 대한 독일 언론의 관심도 높아졌다. <쥐트도이체 차이퉁> <디벨트> 등 독일의 전국신문들은 온라인판에서 “소녀상 당분간 존치 결정”이라는 제목의 지역통신 뉴스를 받아 게재했다. 베를린시 누리집은 시정 소식에 소녀상 철거 반대 시위 소식과 이전에 독일에서 소녀상이 설치됐다가 일본의 반대에 부닥친 사례들을 자세히 소개했다.

베를린 지역 몇몇 언론은 “기념비 전쟁”이라는 타이틀로 이날 시위를 주요하게 보도했다. <베를리너 차이퉁>은 “비스마르크 동상 등 가해자 기념비 철거 논쟁이 한창인 베를린에서 피해자의 기념물을 해체하려 한 보기 드문 논쟁이 벌어졌다”며 “앞으로 행정법원이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고 했다.

베를린/남은주 통신원 nameunjoo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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