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 주의회가 소수 집단이나 저소득층의 투표 참여율을 낮추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킨 25일(현지시각), 투표권 운동 활동가들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주지사의 집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애틀랜타/EPA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이 장악한 조지아주가 투표 참여 문턱을 높히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강하게 비판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연방 의원 등을 뽑는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다른 주들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도 없다.
공화당이 다수인 조지아 주의회는 지난 25일 우편투표 등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역시 공화당 소속인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법안에 즉시 서명했다. 이 법은 우편으로 부재자 투표를 하고자 할 때 사진이 포함된 신분증 사본을 제출하도록 하고, 부재자 투표 신청 기간을 줄이며, 투표함 설치 장소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투표장에 줄 선 사람들에게 음료를 건네는 것도 금지한다. 또 투표 감독을 강화해 주의회에 사실상 실권을 부여했다. 이렇게 되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 인종적 소수 집단이나 저소득층 유권자들이 투표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이들은 대체로 공화당보다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
공화당이 조지아에서 이런 법을 만든 것은 지난해 11월 대선과 올 1월 상원 결선투표에서 연거푸 민주당에게 패배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 남부의 조지아는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이었으나 지난 대선에서 28년 만에, 상원 선거에서 24년 만에 민주당이 승리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편투표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선 불복을 주장했는데, 조지아 관리에게 전화해 뒤집기를 종용한 혐의로 수사도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조지아의 투표법 통과에 대해 26일 성명을 내어 “이것은 21세기의 짐 크로(1964년 폐지된 미 남부의 인종분리법)”라고 과거 흑인 차별 조처들에 비유해 강하게 비난하면서 이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투표하려) 줄 선 사람들에게 물도 제공할 수 없게 하는 법을 그들이 통과시켰다. 이건 잔혹행위”라며 “사람들이 투표 못하도록 고안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투표법 개정은 공화당이 주의회와 주지사를 차지한 애리조나, 텍사스 등 다른 주들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아이오와는 지난 8일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텍사스 주의회의 크리스 터너 민주당 의장은 “공화당은 광범위한 선거 사기가 있다는 주장으로 방화를 저지르더니, 유권자 탄압 법안을 갖고 있지도 않은 선거 사기 불을 끄러온 소방수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주의회와 주지사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으면 민주당이 제동을 걸 방법이 사실상 없다. 터너 의장은 “우리는 투표를 더 어렵게 하는 법안에 단합해서 반대하고 모든 것을 동원해 싸울 것”이라면서도 “힘겨운 싸움”이라고 말했다.
연방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은 지난 3일 투표 확대를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각 주들이 주민들에게 투표 당일 유권자 등록도 허용하도록 하고, 조기 투표도 2주 동안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50석인 상원에서는 이 법이 꽉 막혀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6일 의회에 이 법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지만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에서 무한 반대 토론으로 법안 처리를 합법적으로 방해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인 필리버스터를 손 볼 필요성을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하면서 그 이유의 하나로 투표법 개정도 언급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 개정에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안에서도 반론이 있어 고치기가 쉽지 않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