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한 건물 앞에서 21일(현지시각) 새벽 주민들이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V)자를 만들어 보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휴전을 환호하고 있다. 가자/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 충돌이 열하루 만인 21일(현지시각) 휴전으로 막을 내렸다. ‘11일 전쟁’으로 기록될 이번 충돌에서, 특히 팔레스타인은 주민 232명이 사망하고 수만명이 피난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치권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세력을 강화하는 등의 성과를 얻었다.
지난 15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에이피> 통신 등 외국 언론사들이 입주한 건물에 이스라엘의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 가자/AP 연합뉴스
지난달 중순,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 성지인 동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주민 간 충돌로 시작된 갈등은 한 달이 흐른 지난 10일 이스라엘을 향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로켓탄 공격으로 무장 충돌로 비화됐다. 이스라엘은 방공망으로 하마스 공격을 막으면서, 전투기와 야포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무차별 공습했다. 11일 내내 사실상 일방적인 가자지구 폭격이 이뤄졌다.
이 폭격으로 어린이 65명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주민 232명이 숨졌고 1900여명이 부상했다. 또 가자지구에 있는 13층 건물을 포함해 민간인 주거 건물은 물론 병원과 학교, 상점 등 수백채의 건물이 파괴되면서 7만여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유엔(UN)과 국제 인권단체 등은 무력충돌 초반부터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팔레스타인 학살이라며 중단을 촉구해 왔다.
이스라엘 쪽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하다. 어린이 2명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했고, 수백명이 부상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4500발이 넘는 로켓포를 발사했으나, 로켓포를 추적해 요격하는 방공망 시스템 ‘아이언돔’을 가동해 상당부분 무력화했다.
20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향해 155㎜ 야포를 쏘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민간인 사망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으나 양쪽 정치세력은 상당한 정치적 성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15년 동안 이스라엘 총리를 지낸 네타냐후는 정치 생명을 이어갈 기회를 얻었다. 네타냐후는 지난 2년간 4번 총선을 치렀지만 연정 구성에 실패했고, 부패 혐의로 재판까지 받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총선에서 패하면서 연정 구성 권한이 야당에 넘어갔고, 타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번 충돌로 야당의 연정 구성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고 연정 협상 만료 시한인 다음 달 초가 지나면 다시 총선을 치러야 한다. 긴장 강화에 따라 강경파가 힘을 얻으면서 네타냐후가 15년의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하마스는 이번 휴전을 “승리”라고 표현했다.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은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이 이끄는 파타가 통치하지만 가자지구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한다. 두 세력은 오는 22일 15년 만에 통합 총선을 치르기로 했으나 지난달 말 아바스 수반이 패배를 우려해 선거 연기를 선언했다. 1990년 탄생 이래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파타는 이번 충돌에서도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충돌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으나 이스라엘을 향해 강경한 태도를 취한 무장정파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10일(현지시각)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 상공에서 이스라엘군의 단거리 미사일 요격 체계인 ‘아이언 돔’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날아오는 로켓을 요격하고 있는 모습이 느린 셔터 스피드 촬영 때문에 빛의 궤적까지 보인다. 아슈켈론/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충돌의 근본 원인이 된 동예루살렘 문제에 대해 양쪽이 어떤 합의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모두 이번 휴전이 ‘상호 조건 없이’ 진행됐다고 밝혔지만, 일부 하마스 지도부는 동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양보를 언급했다. 하마스의 고위직 오사마 함단이 아랍권 위성 방송 <알마야딘>에 “이스라엘로부터 (동예루살렘) 성전산과 셰이크 자라 정책에 관한 확약을 받았다”고 말한 것이다.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성전산은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의 성소로,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인 알아크사 모스크(사원)가 있다. 성전산은 1994년 평화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이 아닌 요르단이 주도하는 이슬람 종교재단 ‘와크프’가 관리하고 무슬림만 사원 내에서 기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무슬림의 종교 활동을 이스라엘이 방해하고 그 과정에서 종종 충돌이 발생했다. 셰이크 자라는 알아크사 사원에서 2㎞ 떨어진 곳으로 이스라엘이 여기에 정착촌을 건설하면서 앞서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 퇴거시켜 갈등의 요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이 두 가지 문제를 양보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가자지구를 공격했고, 국제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휴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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