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해 2월 베이징 중국 외교부에서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한-미 정상이 지난 21일(현지시각)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한 것을 두고 중국 외교부가 “내정 간섭”이라며 우려를 표했으나, 지난달 미-일 정상의 공동성명 당시 “난폭한 내정 간섭” 등 거칠게 비판한 것에 견줘 수위를 조절한 기색이 역력하다. ‘중국 견제’ 의도를 여과 없이 드러낸 미-일 공동성명과 달리 이번엔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없었던데다, 한국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중국 쪽과 긴밀히 소통해온 점 등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대만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이며,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며 “중국은 공동성명 내용에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국가들은 대만 문제에 대해 언행을 신중하게 하고 불장난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미 정상은 지난 21일 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또 두 정상은 “남중국해 및 여타 지역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강조하고, “규범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를 저해, 불안정 또는 위협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자오 대변인은 남중국해와 관련해선 “각국이 국제법에 따라 남중국해에서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므로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관련국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미 관계 발전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에 도움이 돼야지 그 반대여서는 안 되며, 중국을 포함한 제3자의 이익을 해쳐서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해 정부 차원의 공식 반응을 내놓은 것은 사흘 만의 일이다.
자오 대변인의 이날 발언은 지난달 16일 미-일 정상이 공동성명을 냈을 때와는 온도 차가 크다. 당시 미·일 두 정상은 대만 문제에 더해 홍콩과 신장위구르(웨이우얼), 티베트(시짱) 문제까지 거론했다. 또 남중국해 문제와 함께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도 언급했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주말임에도 17일 밤 즉각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성명을 내어 “중국의 내정을 거칠게 간섭하고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며 “중국은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미국과 일본은 입으로는 ‘자유와 개방’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패거리’를 만들어 대결을 선동한다”며 “이는 시대의 흐름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과 일본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며, 내정 간섭과 중국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은 필요한 모든 조치를 통해 국가의 주권과 안전, 개발이익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 미-일 성명에 대한 중국 쪽의 각기 다른 대응은 ‘반중’을 노골화한 일본과 달리 한-중 관계는 ‘관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24일 방미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기자들과 만나 “중국과 상시적인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중국도 한국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미 간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대만해협 관련 내용이 포함된 것에 대해 “양안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역내 정세의 안정이 우리에게도 중요하다는 기본 입장을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수준에서 포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쪽은 ‘말’뿐 아니라, ‘외교적 대응’ 수위에서도 미-일 정상회담 때와 차이를 나타냈다. 미-일 공동성명을 비난하면서 중국 쪽은 “이미 외교적 통로를 통해 미국과 일본에 엄정한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지만, 한-미 성명과 관련해선 ‘엄정한 입장 표명’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 역시 “한-미 공동성명 문제를 포함한 현안에 대해 중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만 밝혔는데, 외교 경로를 통한 ‘공식 항의’는 없었다는 뜻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는 30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2021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P4G 서울 정상회의)에 중국 최고위급 인사가 참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한-중 관계에 변동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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