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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납치가 ‘산업’이 된 나이지리아, 6개월간 900명이 사라졌다

등록 2021-05-31 15:08수정 2021-05-31 20:26

최현준의 DB_deep
학생·공무원·사업가 등 대상으로 수천~수백만 달러 지급돼
10년간 몸값 200억원…공권력이 ‘남한 8배’ 국토 감당 못해
나이지리아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2014년 영상을 통해 공개한 납치한 치복 여학생들의 모습. 유튜브 갈무리
나이지리아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2014년 영상을 통해 공개한 납치한 치복 여학생들의 모습. 유튜브 갈무리

30일(현지시각) 오후 나이지리아 북서부 니제르주 테기나의 한 이슬람 교육학교에 총을 든 괴한들이 들이닥쳐 마을 사람 1명을 살해하고 학생 150~200명을 납치해 돌아갔다. 지난해 12월 이래 벌써 6번째 대규모 학생 납치 사건이다. 여섯번의 사건에서 납치된 학생은 모두 900명이 넘는다. 이번 사건을 제외하면, 상당수가 무사 귀환했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학생도 수십여명 있다.

나이지리아가 납치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소규모 납치 사건도 적지 않다. 농민이나 공무원, 사업가 등을 납치해 수천~수백만 달러를 받고 풀어주는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30여건의 납치 사건이 발생했고, 몸값으로 지급된 돈만 1800만 달러(200억원)가 넘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나이지리아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 2천달러)을 감안하면, 약 9000명의 연간 소득이 납치 범죄의 몸값으로 지급된 셈이다. 납치는 나이지리아에서 산업이다.

 

 7년 전 4월 어느 밤, 사라진 276명의 소녀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2014년 4월14일 밤, 나이지리아 북동부 보르노주의 작은 마을 치복에서 발생했다. 한 공립 중학교에서 여학생 276명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이지리아 대규모 학생 납치 사건의 시작이었다. 나이지리아 북부를 근거지로 한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의 소행이었다. 무력과 조직력을 갖춘 보코하람이 300명에 가까운 학생을 납치해 수년 동안 억류했다.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에 세계가 경악했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미셸 오바마가 학생들의 무사 복귀를 호소했고, 유엔(UN)도 규탄에 나섰다. 이후 학생들은 수 년에 걸쳐 탈출하거나 석방됐다. 출산한 아이를 안고 돌아온 학생들도 있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학생도 100여 명에 이른다.

2017년 5월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의 대통령궁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보코하람에 납치됐다가 귀환한 치복 지역 여학생 82명을 위한 환영회가 열리고 있다. 아부자/AFP 연합뉴스
2017년 5월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의 대통령궁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보코하람에 납치됐다가 귀환한 치복 지역 여학생 82명을 위한 환영회가 열리고 있다. 아부자/AFP 연합뉴스

치복 사건이 잊혀지던 2018년 2월, 북동부 요베주 다프치의 한 중학교에서 여학생 110명이 납치됐다. 치복에서 200여㎞ 떨어진 곳으로, 역시 보코하람 소행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사건 한 달 만인 3월 말 학생들이 모두 풀려났다. ‘여성 교육’을 반대하는 보코하람은 여학생들에게 “다시는 학교에 가지 마라”는 경고를 남겼다. 정부가 보코하람에 석방 대가로 몸값을 지불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지만,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대규모 납치 사건은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북서부 카트시나주 칸카라에서 300여명의 남자 중학생 납치 사건을 시작으로, 지난 2월 중순엔 니제르주의 카가라에서 27명의 남학생이 납치됐다. 그달 26일 잠파라주 장게베의 한 기숙학교에서는 279명의 여학생이 납치됐고 3월과 4월에는 대학생 30~40명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나이지리아 카트치나주 칸카라의 한 중학교에서 무장 괴한들한테 납치됐던 학생들이 일주일 만인 18일 생환한 가운데, 한 남성이 살아 돌아온 아들을 들어 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카트치나/AFP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나이지리아 카트치나주 칸카라의 한 중학교에서 무장 괴한들한테 납치됐던 학생들이 일주일 만인 18일 생환한 가운데, 한 남성이 살아 돌아온 아들을 들어 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카트치나/AFP 연합뉴스

 ‘뜨는 산업’이 된 납치

2014년 치복 사건 이후 변화가 감지된다. 치복 사건에서는 아직 행방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100여명에 이르지만, 이후 사건에서는 대부분 석방됐다. 납치에서 석방까지 걸리는 시간도 단축됐다. 2018년 다프치 사건의 경우 학생들이 모두 석방될 때까지 한 달 정도 걸렸는데, 이후 칸카라 사건과 카가라 사건 때는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모두 풀려났다. 장게베 사건 때는 나흘까지 단축됐다.

치복 사건이 극단주의 이슬람을 신봉하는 보코하람의 성격이 많이 반영됐다면, 최근 사건들은 경제적 동기, 즉 몸값에 보다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무함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지난 2월27일 본인 트위터에 “주 정부는 돈과 차량으로 도둑에게 보상을 하는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그러한 정책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방 정부가 납치범들에게 석방 대가로 몸값을 지불하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이다. 각 사건에서 주 정부는 몸 값을 지불했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나이지리아 시민들은 몸값 지불을 암묵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뉴욕 타임스>는 현지 전문가를 인용해 일부 공무원들이 납치범과 정부 사이에서 몸값의 일부를 빼돌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소규모 납치 사건도 적지 않다. 나이지리아 지정학 연구소인 에스비(SB) 모르겐이 지난해 5월 발표한 ‘나이지리아 납치 산업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2011년 6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약 10년 동안 이 연구소가 자체 집계한 납치 사건은 134건에 이른다. 납치범들에게 지급한 몸값은 총 1834만달러다. 몸값을 200만달러 지급한 납치 사건은 두 건이었고, 100만달러 대 몸값을 지급한 사건은 6건에 이른다. 반면, 1000달러 이하 몸값을 받은 사건도 8건이나 되고, 2019년 11월에는 110달러를 몸값으로 지불한 사건도 있었다.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를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사건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 통계는 에스비 모르겐이 공개된 자료를 통해 자체 집계한 것인데, 실제 납치 사건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 나이지리아 카트치나주 칸카라의 한 여성이 납치됐다 돌아온 아이를 기다리며 울고 있다. 카트치나/AP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나이지리아 카트치나주 칸카라의 한 여성이 납치됐다 돌아온 아이를 기다리며 울고 있다. 카트치나/AP 연합뉴스

 북부 건조 지역에 미치지 못하는 공권력

나이지리아에서 이렇게 납치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넓기 때문이다. 인구 2억1천만명으로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는 국토 면적 92만㎢로 남한의 9배에 달한다. 2014년 치복 사건 이후, 특히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납치 사건이 잇따르고 있지만 정부는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남부는 바다와 접해 있고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인구가 많고 치안 사정이 상대적으로 괜찮다. 하지만 건조한 기후에 유목 산업이 중심인 북부 지역은 인구 밀도가 낮고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적지 않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200여개 이상 소수 민족이 인위적으로 뭉친 탓에 종족 간 갈등이 적지 않고, 종교적으로도 남부 기독교와 북부 이슬람으로 양분돼 있다. 예전부터 북부 이슬람 유목 세력이 남부 기독교 농경민들을 침략하는 일이 잦았고, 지금도 이런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틈새를 비집고 2000년대 초부터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인 보코하람이 나이지리아 북동부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최근 몇년 새 북서부 지역으로 세를 확장하면서 지역 무장 강도들과 손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칸카라 사건도 보코하람의 주 근거지가 아닌 칸카라 주에서 발생했지만 보코하람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나이지리아 정부의 병력 재편도 공권력 공백에 한 몫 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2019년 군 병력 배치를 ‘넓게 흐트러트린’ 형태에서 ‘좁게 모은’ 형태로 바꿨다. 지역에 흩어진 군인들이 보코하람이나 무장강도의 습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군 병력을 ‘슈퍼 캠프’라 불리는 몇 개의 거점 기지로 모은 것이다. 이로 인해 북부 지역의 군사 대응력이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8년 다프치 사건 때는 사건 직전 군 부대가 해당 지역에서 철수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된 바 있다.

국제 사회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엔은 치복 사건 이후 2천만 달러를 들여 보호 수준을 높인 ‘안전한 학교’ 계획을 실행했지만 2018년 다프치 사건으로 이 계획에 의문이 제기됐고, 최근 잇딴 사건으로 사실상 효과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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