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추진됐던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첫 대면 정상회담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가 ‘수출규제 조치 철회’라는 성과를 고집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문재인 정부가 도쿄올림픽 개회식(23일)에 맞춰 방일을 보류하겠다고 하면서 일본의 양보를 강요하는 ‘벼랑 끝 외교’를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고 2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국이 여론의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정상회담 성과로 일본 정부의 대한 수출관리 엄격화 조치 해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세웠다”며 “결국 일본이 동의하지 않자 청와대가 가지 않는 게 낫다고 최종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현안 해결보다 대화 자체에 무게중심을 뒀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 신문은 “일본 정부가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 성과가 없더라도 대화 재개를 위한 실마리로 삼겠다는 생각이었다”며 “코로나19로 축소된 올림픽 외교의 하나로도 기대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법 마련 등 ‘선조치’가 없으면 수출규제 철회도 어렵다는 입장이었다는 얘기다. 이 신문은 또 “한국 정부가 방일에 적극적이었다”면서 “조 바이든 미국 정부로부터 대일 관계 개선을 요구받은 배경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선 주한일본대사관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가 문 대통령을 겨냥해 성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비하한 사건이 확산되면서 한국의 분위기가 급속히 달라졌다고 보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 신문에 “18일까지 90% 회담이 실현되는 방향이었는데, 19일 분위기가 변했다”고 말했다. 소마 공사의 경질(본국 소환) 방침은 이미 굳어진 상태였다고 전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일본 외무성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쪽은 문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도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맞는 성과를 얻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성과는 수출규제 조치 해제를 말한다. <아사히신문>도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이 수출규제를 양보하면 지소미아를 정상화하겠다는 제안을 했다”며 “총리 주변에선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제안을 받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문 정부에서 관계 개선은 이제 무리”라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의례적인 외교의 장에서 성과를 수반하는 정상회담 실현을 강력히 요구한 한국 쪽의 자세가 (정상회담 무산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소마 공사의 부적절한 발언도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일본 정부의 경우 어디까지나 의례적인 대응에 그친다는 자세로 일관했다”며 “강제징용 문제 등으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문 대통령과 만나도 소득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외무성 한 간부는 이 신문에 “문 대통령이 일본에 방문해도 ‘선물’은 준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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