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선수촌 내부에 설치된 골판지 침대.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 도쿄/EPA 연합뉴스
“기분이 나빴을 분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침대가 얼마나 튼튼하지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올림픽 선수촌에 있는 골판지 침대를 일부러 부숴버린 이스라엘 야구팀 벤 와그너가 29일 사과 영상을 올렸다고 일본 <지지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이스라엘 야구 선수들은 골판지 침대가 몇 명까지 버티는지 실험을 하겠다며 1명씩 올라가 점프하는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8명까지 버티던 침대가 9명이 올라가 펄쩍펄쩍 뛰자, 무너졌다. 이에 대해 온라인에선 “일부러 선수촌 기물을 파손했다. 변상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고, 와그너 선수가 사과에 나선 것이다.
골판지 침대를 만든 에어위브(Airweave) 홍보 담당자는 <요미우리신문>에 “테스트 단계에서 메달리스트가 침대 위에서 기쁘게 뛰었다는 것도 상정했다”면서 “다만 9명이 동시에 뛰는 것까지는 예상외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침대를 만든 기업으로 엉망진창이 된 영상이 확산된 것은 유감이지만 선수들이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도쿄올림픽에 참여한 선수들이 머물고 있는 선수촌과 관련해 ‘골판지 침대’는 유독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무와 철제로 된 침대에 익숙한 선수들에겐 골판지 침대가 낯설 수밖에 없다. 또 선수들 입장에선 컨디션을 좌우할 편안한 수면과 안전이 중요한데, 골판지 침대가 내구성이 약해 위험하다는 우려도 작용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 야구 선수들은 골판지 침대가 몇 명까지 버티는지 실험을 하겠다며 1명씩 올라가 점프하는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9명이 올라가 펄쩍펄쩍 뛰자, 침대가 무너졌다. 영상 갈무리
일본 정부는 왜 하필 골판지 침대를 선수촌에 설치했을까? 침대를 만든 ‘에어위브’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아사다 마오 등 일본 운동선수들을 오랫동안 후원해온 유명 침구업체다. 이 회사는 골판지 침대가 계속 논란이 되자, 최근 공식 입장을 내놨다. 골판지 프레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매트리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침대 매트리스는 일반적으로 하나로 돼 있는데, 이 회사 제품은 어깨‧허리‧다리 등 3개로 분할돼 있다. 각각의 매트리스는 딱딱함 등 쿠션 정도가 달라, 선수의 근육‧체형‧체중 등에 맞게 매트리스를 움직여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선수들이 자신의 몸에 맞게 매트리스를 움직일 수 있도록 두께를 최소화했다. 매트리스가 얇아 완충 작용이 약화돼 프레임에 부하가 걸리는 만큼, 내구성이 상당히 중요해진 것이다. 이 회사는 “목재나 철제 등 다양한 소재로 검증한 결과 골판지가 가장 튼튼했다”며 “200kg까지 대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재활용이나 비용도 감안이 됐다. 매트리스 등 골판지 침대는 약 3년의 걸쳐 개발됐다고 강조했다.
골판지 침대를 만든 일본 유명 침구회사는 골판지 프레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매트리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에어위브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선수들 사이에선 골판지 침대의 약한 내구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2일 뉴질랜드 조정 선수는 침대에 앉자 골판지 프레임이 찌그러졌다며 영상을 올렸다. 한국 역도 109kg급 진윤성 선수도 지난 27일 골판지 침대가 찢어진 영상과 함께 “일주일만 더 버텨봐…시합까지만”이라는 글을 올렸다.
안전성 문제뿐만 아니라 폭 90cm, 길이 210cm로 싱글 사이즈 침대보다 작은 크기나, 일본에서 재해 때 피난처에서 자주 사용되는 등 골판지가 임시적 재료라는 이미지도 부정적 인식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골판지 침대 불신이 커지자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친형이 골판지 관련 회사에 근무했다며 유착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에 더해 최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1박에 250만엔(약 2500만원)짜리 호화 숙소에서 머물고 있다는 일본 언론보도까지 나오자, 골판지 침대가 선수촌의 열악한 환경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고 있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 선수촌에서 주로 생활하는 선수들은 골판지 침대뿐만 아니라 객실에 텔레비전과 냉장고가 없고, 세탁소도 부족하다며 생활의 불편을 제기하고 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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