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에게 지원되는 도시락.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한국 올림픽 선수단을 위한 도시락 급식지원센터와 관련해 후쿠시마에 부정적 이미지를 부추기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 대응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치권에 이어 정부까지 나서는 등 ‘올림픽 도시락’이 한-일 외교 문제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교도통신>은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선수단이 후쿠시마 식재료를 피하기 위해 자체 급식센터를 설치한 것을 두고 ‘소문 피해’를 조장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지난달 하순 한국 외교부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고 2일 보도했다. ‘소문 피해’라는 것은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뒤 복구 작업이 진행됐으나 방사성 물질이 위험하다며 여전히 후쿠시마 음식을 먹지 않고 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산케이신문>도 “한국 정부는 급식센터 설치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일본 쪽에서는 한-일의 새로운 정치문제로 발전할 우려가 있어 행동의 개선을 선수단에 요구하도록 지난달 하순 한국 외교부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도 3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후쿠시마 식재료가 안전하다는 것을 한국 쪽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모테기 외무상은 “(지진) 피해 지역의 농림수산물이 안전하다고 세계를 향해 호소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면서 “한국 쪽에 지금 말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이날 모테기 외상의 발언에 대해 “우리 외교부 차원에서는 일본 측으로부터 외교 경로를 통해 관련 입장을 전달받은 바는 없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본 정치권에선 한국 급식센터를 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해왔다. 대표적으로 사토 마사히사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은 일본 언론에 “한국이 ‘방사능 프리 도시락’이라고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후쿠시마의 마음을 짓밟는 언동이라 불쾌하다”고 말해왔다. ‘방사능 프리 도시락’이라는 용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일본 누리꾼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말이다. 일본에선 후쿠시마 식재료를 한국 선수들이 먹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급식센터를 만들어 도시락을 제공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와 언론에서도 오해라고 여러 차례 설명이 이뤄졌다. 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일본에 방문한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도쿄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급식센터는 올림픽에서 매번 운영하고 있다. 컨디션 관리와 입맛에 맞는 음식 때문”이라며 “원하는 선수만 도시락을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급식 센터가 오해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실제 올림픽 급식센터는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등장해 올림픽 때마다 선수들을 위해 한식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후쿠시마산 식자재에 대한 불안이 있는 만큼, 이번 도쿄올림픽에선 후쿠시마 등을 제외한 지역의 식자재만 구입해 도시락을 만들었다.
한국만 후쿠시마 농수산물에 대한 안전성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미국‧중국 등 15개 국가·지역에서 일본 농수산물‧식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등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한국을 상대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수년의 논쟁 끝에 한국이 승소한 바 있다. 무역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조차 환경과 건강을 내세운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일본은 국제회의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15개 국가에 대해 “수입금지를 철폐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이 정부까지 나서 한국 도시락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후쿠시마 부흥올림픽’이라는 목표가 사실상 실패한 속에서 여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도쿄올림픽은 ‘부흥올림픽’보다 ‘안전‧안심 올림픽’이 더 강조되고 있으며 이마저도 일본의 폭발적인 코로나 확산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농수산‧식품 수입금지, 오염수 바다 방류 반대에 이어 도시락을 만들 때 후쿠시마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자, 한국이 후쿠시마 이미지를 계속 악화시키고 있다고 여론을 몰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지지통신>은 “한국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 방사성 물질의 오염을 걱정하는 소리가 뿌리 깊다”며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나 식품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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