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일본 나라현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총기로 저격한 남성이 범행 직후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를 사망케 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는 전직 해상자위대원으로 3년간 장교로 복무하다 2006년 전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신조(67) 전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8일 거리 유세 과정에서 총격을 당해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이자, 보수·우익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아베 전 총리의 피격 사망 소식이 보도되면서 일본 열도는 형용할 수 없는 큰 충격에 빠졌다.
후쿠시마 히데타다 나라현립 의과대 부속병원 교수(응급학)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베 전 총리가 치료를 받던 중 오후 5시3분께 사망했다. 사인은 출혈로 보인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교수는 “아베 전 총리가 낮 12시20분 병원에 도착했고, 이미 심폐 정지 상태였다. 목 앞부분 2곳에 총창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고, 심장까지 손상이 보였다”고 말했다. 왼쪽 어깨에는 총알이 관통한 것으로 보이는 상처도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8일 오전 11시30분께 나라시 역 근처에서 거리 연설을 하던 도중, 등 뒤에서 총을 맞아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저녁 7시께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깝다.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아베 전 총리의 목숨을 앗아간 비열한 만행이 자행됐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아베 전 총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엔에이치케이>(NHK) 등 일본 방송들은 정규 방송을 멈추고 긴급 속보를 내보냈다.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30분께 일본 간사이에 속하는 나라현 야마토사이다이지역 근처에서 1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막바지 거리 유세를 하던 도중, 등 뒤에서 쏜 총에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현장 상황을 담은 영상을 보면, 두번에 걸친 큰 총성과 시민들의 비명을 확인할 수 있다. 전직 해상자위대원으로 확인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41)는 현장에서 잡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아베 전 총리를 쏜 ‘산탄총’으로 알려진 사제 총도 압수됐다. 용의자가 일본인으로 확인되자 일본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시달려온 재일동포(자이니치)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장 영상을 보면, 아베 전 총리가 연설을 시작하고 1~2분 정도 지났을 때 첫번째 총성이 들리고 뒤이어 두번째 총성이 났다. 사건 현장 인근 건물 4층에서 아베 전 총리의 연설을 지켜봤던 한 고등학생(17)은 <아사히신문>에 “아베 전 총리 등 뒤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 총을 쐈다”며 “첫발은 맞지 않았는지 아베 전 총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남자가 조금 물러나 총을 다시 쏘자 아베 전 총리가 쓰러졌다. 총에는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고 말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쓰러지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아베 전 총리는 총을 맞은 직후부터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심각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엔에이치케이>는 총무성 소방청에 오후 1시30분께 접수된 정보를 인용해 아베 전 총리가 심폐 정지 상태로 보이며, 오른쪽 목과 왼쪽 가슴에 출혈이 있다고 전했다. 구급차로 이송되는 단계에는 의식이 있었지만 이후 호흡과 심장이 정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전 총리의 상태가 심각해 헬기를 통해 인근 대형병원인 나라현립 의과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오후 4시40분께 부인 아키에가 병원에 도착했다.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방위상도 오후 기자들을 만나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아베 전 총리가 회복되길 기원한다”고 말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에 관저대책실을 만들어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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