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 마련을 위한 한-일 외교당국 간 국장급 협의가 열린 30일 오후 서울 외교부 앞에서 역사정의와 평화로운 한-일 관계를 위한 공동행동 활동가들이 긴급 항의행동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일본 정부가 한-일 간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나 ‘직접 사과’를 허용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도 큰 틀에서 이 안을 수긍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요미우리신문>은 31일 복수의 한·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양 정부는 한국 쪽이 검토 중인 징용공 소송 문제의 해결 방안과 관련해 금전적 부담 등에 대해 피고 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의 직접 관여를 피하는 형태로 매듭을 짓기 위한 조정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또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문제는 해결됐다’는 일본 입장이 확고해 한국 정부도 피고 기업의 직접 관여가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덧붙였다. <산케이신문>은 아예 “한국 정부가 3월1일(삼일절)을 앞두고 2월 중 최종 해법을 발표하기 위해 막바지 조율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30일 서울에서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에게 새로운 사과와 피고 기업의 배상 참여는 불가하다는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교부는 지난 12일 토론회에서 일본 피고 기업 대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기금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이른바 ‘제3자에 의한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공식화한 뒤, 피고 기업의 기부 참여와 사과 등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거듭 촉구해왔다.
다만, 일본 정부는 한국이 요구하는 ‘성의 있는 호응’과 관련해 피고 기업이 아닌 다른 기업의 자발적 기부는 허용하겠다는 생각이다. 총리 관저 간부는 <아사히신문>에 “사업적 관점에서 기부 참여가 좋다고 생각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막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를 통한 재단 기부 방안도 부상하고 있다. 피고 기업이 소속된 경단련이 기부를 하면, 피고 기업이 재원을 간접 출연했다는 모양새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피고 기업의 직접 사죄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아사히신문>에 “배상 문제는 (이미) 해결이 끝났기 때문에 정부가 새롭게 반성이나 사과를 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 해결에 나선 윤석열 정부를 돕기 위해 일본 총리들이 예전에 내놓은 반성적 역사 인식을 담은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는 뜻을 재차 밝히는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 등을 통해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국의 해결 방안을 살펴본 뒤 구체적인 내용·형식·시기를 판단할 예정이다.
이에 대한 한국 여론은 매우 싸늘한 상황이다. <문화방송>이 18~19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3.7%, <한국방송>의 18~20일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0%가 현재 논의 중인 안이 ‘피해자의 반영이 미흡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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