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왜곡 역사교과서 채택률 저조의 책임론에서 불거진 극우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내부 주도권 다툼이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이상으로 심각하다.
새역모는 내분 수습을 위해 지난 11~12일 지부장·평의원·이사들의 합동회의를 도쿄 시내에서 열었다. 이 자리에선 상당히 격렬한 발언들도 쏟아졌다. 비판의 표적이 된 사람은, 야기 히데쓰구 전 회장과 미야자키 마사하루 사무국장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던 후지오카 노부카쓰 전 부회장이다. 후지오카는 지난달 27일 집행부 동반 퇴진의 형식으로 회장과 함께 해임됐으나, 최근 ‘회장보좌’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복권됐다. 다네가시마 오사무 새 회장은 이사회 절차도 밟지 않고 규정에도 없던 직책을 만들어 그를 임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역모 홈페이지에 실린 합동회의 발언록을 보면, 고치현 지부장은 이번 사안은 사무국장인 미야자키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후지오카 문제라면서 “혼란의 책임을 지고 이사직을 떠날 생각이 없느냐”고 그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기후현 지부장 대리는 혼란의 당사자인 후지오카가 집행부에 남아 있는 것은 의혹을 씻기 어렵다며 회장 해임과 같은 중대사안은 총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지오카의 복권에 불만을 품은 새역모 역사교과서 감수자인 이토 다카시는 그와 함께 일할 수 없다며 이사를 사임한다는 편지를 집행부에 보냈다고 새역모의 움직임에 정통한 ‘교과서네트21’ 다와라 요시후미 사무국장은 밝혔다.
앞으로 새역모는 교과서 집필이 아니라 채택에 주력해야 하는 만큼 후지오카나 니시오 간지 초대 회장 등 현재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론가’들은 배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들도 나왔다. 기후현 지부장 대리는 “교과서 집필과 채택의 권한은 분리하는 게 좋다”며 “새역모의 사명이 끝나가고 있으니 발전적 해소도 시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역모는 말 그대로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고 교과서는 완성됐으니, 채택에 집중할 새 조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한 평의원은 니시오에게도 문제가 있다며, 이사가 너무 많은데 학자 가운데서도 채택에 힘을 쏟는 사람들로 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키타현 지부장은 학자들도 좋지만 좀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후쿠오카현 지부장 대리는 인맥·선전력·자금력이 있는 경제인을 이사진에 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내분으로 새역모와 극우 산케이신문사의 관계에도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한 참석자는 내분 소식을 전한 <산케이>의 기사가 한쪽의 정보만으로 쓰여진 것이라며, <아사히>가 기뻐할 내용이어서 충격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참석자는 <산케이> 기사에 대해 항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야기 회장 해임에 관해 <산케이>는 ‘니시오 섭정’ ‘집행부 공동화 우려’ 등의 표현을 쓰며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사 사장은 야기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산케이그룹의 후소사가 엄청난 적자를 보면서 새역모 교과서를 계속 펴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새역모는 조직을 추스리고는 있으나 부회장 전원과 사무국장이 공석인 상태다. 이런 내분이 당장 모임 해체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한 세 약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동안에도 새역모는 내부의 권력투쟁이나 노선다툼, 지나친 극우성향으로 회원 이탈이 잦았다. 다와라에 따르면, 1998년 2월 초대 사무국장이 사실상 추방됐고, 7월에는 후지오카와 또다른 부회장이 주도권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 함께 해임됐다. 2대 사무국장 역시 99년 9월에 갑작스레 해임됐고, 2002년에는 반미 성향의 극우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 이사대우 등이 후지오카 쪽과 친미·반미 논쟁을 벌인 끝에 모임을 떠났다. 이번에는 쫓겨난 미야자키가 야기 해임 당시 이사들의 찬반 표결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담은 글을 홈페이지에 기습적으로 올린 뒤, 새 회장 쪽이 뒤늦게 이를 취소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편, 다네가시마 회장은 국수주의·천황주의를 표방하는 한 종교집단의 관계자이며, 새역모 회원의 25% 정도와 사무국 직원의 상당수가 이 단체 회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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