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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하이브리드카’에 낀 거품

등록 2006-05-08 15:06수정 2006-05-11 21:34

2005년 10월 미국 자동차 관련잡지에 실린 의견 광고. ‘도요타는 양의 탈을 쓴 늑대인가?’라는 제목 아래 와타나베 가쓰아키 도요타 사장의 실제 얼굴과 늑대 탈을 씌운 얼굴을 대비시켰다.
2005년 10월 미국 자동차 관련잡지에 실린 의견 광고. ‘도요타는 양의 탈을 쓴 늑대인가?’라는 제목 아래 와타나베 가쓰아키 도요타 사장의 실제 얼굴과 늑대 탈을 씌운 얼굴을 대비시켰다.
[도요타의 또다른 얼굴] 3. 연비7.7㎞가 ‘환경차’?…할리우드스타도 동원 ‘단골’
‘도요타는 양의 탈을 쓴 늑대인가?’

지난해 10월24일 미국의 자동차 업계 관련지와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된 충격적인 의견광고다. 와타나베 가쓰아키 도요타자동차 사장의 옆에 같은 복장으로 머리에 양의 가죽을 댄 늑대의 모습을 실은 것이다.

이 광고를 낸 곳은 맑은 물과 공기를 위해 싸워온 캘리포니아의 비영리 환경단체 블루워터. 이 광고는 미국에서 환경문제를 이유로 일본 자동차 업체를 공격한 유일한 것이다. 환경친화 이미지가 가장 높은 도요타가 왜 환경단체의 타깃이 됐을까?

이 단체는 도요타의 연료겸용차(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가 깨끗하고 효율적인 차의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도요타의 환경친화 이미지에 ‘거품’이 많이 끼어 실체와 간극이 크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도요타는 깨끗한 미래를 위해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으면서 조용히 세 걸음을 뒷걸음질쳤다”는 게 이 단체의 주장이다.

연비가 ℓ당 7.7㎞인 차가 ‘환경차’(?)

도요타 프리우스
도요타 프리우스

먼저 지난해 하반기 새로 출시된 도요타의 연료겸용차 2종이 일반 가솔린 엔진 차량에 비해 환경 효율성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점이 지적됐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연료겸용과 일반 차량 사이의 연비차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연료겸용 하이랜더는 지난해 자동차 전문가의 1주일에 걸친 시험주행에서 갤런(3.78ℓ)당 20.6마일(1마일 1.6㎞)을 달리는 데 그쳤다. 미국 환경보호청 평가치인 33마일(시내)/28마일(고속도로)와 큰 차이를 보였다. 오히려 가솔린 엔진 하이랜더의 평가치 19마일(시내)/25마일(고속도로)에 가깝다. 렉서스RX 400h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승해본 연료겸용차 렉서스GS 450h는 연비가 ℓ당 7.7㎞밖에 되지 않았다. 연비가 이 정도인 차를 ‘환경차’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게다가 도요타 차량들의 전체 연비 수준이 업계 최고이긴 하지만, 1990년대보다는 나빠졌다. 환경보호청 자료를 보면, 2005년 도요타 차량들의 연비 평균치는 갤런당 27.5마일로, 1985년의 갤런당 30마일보다 줄었다. 연료를 많이 잡아먹는 스포츠실용차(SUV) 등의 생산 비중이 커진 게 원인이다. 미국의 경쟁업체들은 “도요타가 환경친화라면서 연비가 나쁜 트럭 등의 판매에 힘을 쏟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라고 꼬집었다.

이 단체를 가장 열받게 만든 것은 도요타가 캘리포니아주의 배기가스 규제 강화를 저지하는 대열에 동참한 점이다. 환경보호의 선두주자인 캘리포니아주는 2009년부터 신차에 대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의무화했다. 2016년부터는 최대 34% 감축하도록 했다. 미국 자동차 판매의 10%를 차지하는 캘리포니아가 규제강화에 나서면서 11개 주가 뒤를 따랐다. 제너럴모터스(지엠) 등 미국 자동차업계 ‘빅3’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환경규제는 정부의 임무이며, 주의 규제는 무효”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도요타도 보조를 맞췄다. 도요타는 규제 저지를 요구하는 업계 소송단에도 들어갔다. 블루워터는 도요타의 이런 반환경 행태를 비난하면서 “도요타의 로비와 소송은 그동안 조심스레 쌓아온 환경친화 이미지를 훼손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료겸용차로 환경친화 이미지를 높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불이익이 되는 환경규제 강화에는 반대한다. 환경친화는 회사 선전과 판촉 수단으로 활용될 뿐이다.

할리우드 스타들까지 줄 세우는 ‘이미지왕국’

다른 측면에서도 연료겸용차의 환경친화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환경친화성을 엄격히 따지려면, 차량의 제조부터 사용, 폐차까지의 자동차 라이프사이클을 모두 고려한 평가(LCA)가 필요하다. 전기모터와 전지를 추가하는 연료겸용차는 차체가 무거워지기 때문에 경량화를 위해 에너지를 대량 소비하는 알루미늄을 사용한다. 게다가 모터·전지 등을 더 만들어야 하므로 제조단계에선 일반 차량에 비해 환경부하가 더 크다. 결국 장기간 사용해야 환경보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도요타는 연료겸용차가 일반 차량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2% 줄일 수 있다고 선전한다. 이는 ‘사용연한 10년, 주행거리 15만㎞’라는 조건부다. 미즈호정보종합연구소 환경전략솔루션실의 전문가는 “가령 3년 동안 1만㎞밖에 달리지 않고 폐차했다고 한다면 결과는 반대”라고 지적했다. 도요타 스스로도 3만3000㎞ 이상은 달려야 보통차보다 환경부하가 적다고 말한다.

해마다 아카데미 시상식 때면 프리우스를 타고 와서 붉은 양탄자를 밟는 유명 배우들이 눈에 띈다. 전세계로 중계되는 이런 풍경은 도요타의 환경친화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결정적 구실을 한다. 2004년 사상 최연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한 여배우는 프리우스를 타고 시상식장에 나타나,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내가 운전은 하지 못하지만 이 차를 타고온 것으로 지구환경 보호의 의지를 나타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시상식을 소개하는 기사에 “양식 있는 스타는 옷차림 뿐아니라 차 선택에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구절까지 등장할 정도다.

물론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처럼 프리우스를 4대나 구입한 열렬한 지지자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거의 대다수 스타는 잠깐 빌려 탄다. 도요타와 환경단체 ‘글로벌 그린 유에스에이’가 합작한 ‘레드 카펫, 그린 스타(환경친화 배우)’라는 이름의 캠페인이 연출한 것이다. 2003년부터 해마다 이 환경단체가 도요타로부터 프리우스를 무상으로 빌려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제공해왔다. 도요타는 직접적으로 광고할 필요도 없다. 할리우드 스타가 타는 프리우스의 환경친화 이미지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릴 때마다 한층 공고해진다.

도요타 왕국 구축의 또다른 공신 ‘언론’

‘이미지 왕국’ 도요타 구축의 또다른 ‘공신’은 언론이다. 주요 일간지는 물론 잡지 등에서도 도요타를 비판하는 기사가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도요타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도 언론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92년 도요타 직원의 일가족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짤막하게 취급된 이 기사는 직원의 이름과 회사명이 익명처리됐다. 이 사건 재판에서 증언에 나선 사루타 마사키 주쿄대 교수는 “재판과정이나 매스컴에서 피고가 도요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다뤄진 사실을 나로선 결코 잊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3년 뒤 쓰쿠바시에서 발생한 한 의사의 일가족 살인사건은 실명처리됐고,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명백한 이중기준이다.

일본 언론들은 외국 언론처럼 엄격한 시승을 통한 자동차의 성능, 연비 검증 등도 하지 않는다. 반면, 언론의 수많은 도요타 특집은 곧 세계 1위로 등극할 도요타로부터 뭘 따라 배울 것인지를 전하느라 바쁘다.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최대 광고업체) 덴쓰도 광고주에 불리한 기사를 틀어막기는 어렵다. 그러나 광고비 1위인 도요타는 예외다”라고 말한다.

도요타의 2004년 광고비는 817억엔이었다. 오후 6시 이후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도요타 광고가 붙는 게 30개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신문 전면광고는 아사히 6회, 요미우리 5회, 마이니치·닛케이·산케이 3회였다. 신문당 1차례씩만 전면광고를 내보낸 닛산자동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도쿄/<한겨레> 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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