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추진 반발로 결속 강해져
“국가가 전쟁 피해자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겠다는 것을 이해하라고요?”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사는 노자토 치에코(77)는 지난해 8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소송을 시작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격전으로 오키나와인들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는 취지였다. 노자토와 함께 이번 소송에 참여한 한 원고는 일본군이 가족들을 숨어 있던 동굴에서 쫓아내는 바람에 가족 모두가 몰살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일본군은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쟁이 시작된 뒤 현지 주민들에게 집단자살을 강요하거나, 주민들을 피난 동굴에서 강제로 내쫓거나, 식량을 빼앗는 등 갖은 만행을 저질러 민간인들의 피해를 키운 것으로 확인된다. 원고들은 일본군의 당시 행위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원고 한 사람당 1100만엔을 배상하라고 국가에 청구했다. 오키나와 전쟁으로 숨진 이들은 당시 오키나와 인구의 3분의 1 정도인 18만8000명, 그 가운데 민간인이 15만명이다.
<도쿄신문>은 23일 아베 신조 총리가 추진하는 개헌 작업에 대한 반발로 이번 소송에 나선 원고단의 결속력이 매우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처음 소송을 시작할 땐 원고가 40명이었지만, 지난달 4차 공판이 열렸을 땐 70명으로 늘었다. 일본에선 오키나와 전쟁하면 오키나와만의 문제라는 시각이 굳어져 있지만, 이번 소송엔 오키나와에 살다 시즈오카현으로 이주한 여성(72), 미국에 사는 여성(75) 등도 뜻을 함께했다.
이와 별도로 1944년 여름께 일본 정부가 ‘절대방어선’으로 설정하는 바람에 격전이 벌어진 사이판 등 지금의 마리아나 제도 출신 일본인들도 사상 처음으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재판의 첫 공판은 10월께 열릴 전망이다. <도쿄신문>은 두 소송 원고의 평균 연령이 78살에 이른다며, 원고들이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사실을 전할 수 있는 이들은 우리밖에 없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자세로 소송에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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