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집단적 자위권 선언’ 노림수는
“일본 근해에서 미국 이지스함이 일본 이지스함과 함께 (적국의) 미사일 발사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 항공기가 미군 함정을 공격합니다. 일본 함정이 (이를 막을) 능력이 있다고 해도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게 돼 위헌이기 때문이지요.”(아베 총리·25일 미국 허드슨연구소 초청 강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6일 유엔(UN) 총회 연설에서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포장을 씌워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침을 국제적으로 선언하면서 만만치 않은 반향을 부르고 있다. 이 연설을 하기 하루 전날, 아베 총리는 미국의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의 초청 강연에서 일본이 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야 하는지를 여러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한 뒤,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러자 일본 보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요미우리신문>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는) 시대의 요구”라며 아베 총리를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나섰고,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은 “미국 주도의 군사개입에 더 깊숙히 관여하는 것을 과연 평화주의라 부를 수 있느냐”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일본에서 ‘집단적 자위권’ 논쟁은 오랜 역사를 가진 해묵은 이슈다. 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처음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10월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때였다. 당시엔 베트남 전쟁 등의 영향으로 이에 대한 언급 자체가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일본 정부는 사회당의 미나쿠치 고조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는 형식의 자료에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일본이 직접 공격을 당하지 않더라도,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맞고 있는 외국에 대한 무력공격에 대해 실력으로 저지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뒤, “일본은 이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본도 “주권국가로서 이 권리를 갖고 있지만, 현행 헌법상 일본이 무력을 쓸 수 있는 경우는 일본에 대한 급박하고 부정한 침해에 대처하기 위한 경우뿐”이라는 이유였다.
33일 도쿄서 미-일 외교·국방 회담
양국 방어협력지침 개정 합의할듯
아사히 “미-일 동맹 강화가 본질” 이후 40년 동안 일본 정부는 기본적으로 이 견해를 유지해 왔지만, 일본의 보수 세력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지하는 정부의 헌법 해석을 뒤집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베 총리다. 그는 자민당 간사장 시절이던 2004년 1월 “정말 우리 헌법이 이를 부인하고 있는지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며 헌법 해석 변경을 위한 논의 개시를 촉구했다. 이후 2006년 9월 총리(아베 1기 내각) 자리에 오른 뒤 ‘안전보장의 법적기반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이하 간담회)라는 전문가 연구 조직을 구성한다. 당시 간담회는 2008년 6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공해상에서 자위대와 함께 활동 중이던 미군 함정이 공격 받았을 때 △미국으로 향하는 탄도 미사일을 요격할 때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나라 부대가 공격을 받았을 때 △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 대한 후방지원을 할 때 등 4가지 경우엔 현행 헌법 아래서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그러나 1년 뒤인 2009년 8월 정권이 민주당으로 교체되며 실제 정책으로 전환되진 못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재집권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두달만인 지난 2월 중단된 1기 간담회의 뒤를 잇는 2기 간담회를 소집한 데 이어, 8월에는 현행 헌법 아래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가진 야마모토 쓰네유키 내각 법제국 장관(우리의 법제처장)을 경질하고 후임에 자신과 의견이 같은 고마쓰 이치로 전 프랑스 대사를 임명했다. <도쿄신문>은 “2기 간담회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긍정적인 견해를 가진 이들”이라며 “이들이 9월부터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12월께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아베 총리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오는 3일 도쿄에서 열리는 미국과 일본의 외교·국방장관의 모임인 이른바 ‘2+2회의’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날 회의에서 미일 양국은 ‘미일방어협력을 위한 기본 지침’(이하 지침)에 대한 개정 작업을 시작하기로 합의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도했다. 현재의 지침은 냉전 해체 등 변화된 안보 환경에 맞춰 새로 합의된 미-일 신안보전략(1996년)을 시행하기 위해 1997년 9월 작성된 것이다. 그 이후 15년 동안 미일을 둘러싼 안보 환경에 적잖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새 지침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군 따라 자위대 활동범위 커질듯
방위상 “일 안전 관련지역으로 확대”
연립 공명당 반대…실현까진 진통 여기서 미일이 언급하고 있는 안보 환경의 변화란 사실상 중국의 부상을 염두하고 있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28일 사설에서 집단적 자위권의 본질은 ‘미일동맹의 강화’라며 “아베 총리가 이를 통해 노리는 것은 중국의 군사대국화에 대응하고 미일동맹의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군과 자위대가 한 덩어리가 돼 일본이 미국을 지원하는 게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배경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중국, 핵과 탄도 미사일 발사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북한, 사이버 테러 등 국경을 넘어선 안보환경 등의 변화” 등을 꼽았다. ‘아시아 귀환’을 선언했지만 재정 위기와 중동 사태 등으로 아시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미국도 일본이 하루 빨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이 지역에서 미국의 짐을 덜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 등도 노골적으로 일본의 재무장을 환영하는 중이다.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해 활동 범위를 세계화하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원유 수송로 보호론’이 퍼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26일치 1면에서 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범위에 “동맹국에 대한 공격에 대처하는 것뿐 아니라 중동으로부터 에너지를 운송하는 해상 교통로의 안전확보 등 ‘일본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태’를 포함시키는 방침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8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 등이 봉쇄될 경우 기뢰 제거 작업 등에 일본의 소해정이 참가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더 확장시키면 일본은 원유 운송로를 따라 중동 사태,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 대만 해협 등 전세계의 온갖 분쟁에 적극 개입할 수 있다는 논의로 이어진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청 장관도 27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평화와 안전,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관계 없는 곳에까지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무제한 늘이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말을 돌리긴 했지만,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본격화되면 일본의 평화, 안전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역에는 지구 반대편이라도 자위대를 파견할 의사가 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남은 일정은 12월로 예정된 간담회의 보고서 제출,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의 의견 조정 등이다. 그러나 현재 공명당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의견 조정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경험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안보체제의 하위 파트너라는 위치에 끼어 있는 한국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양국 방어협력지침 개정 합의할듯
아사히 “미-일 동맹 강화가 본질” 이후 40년 동안 일본 정부는 기본적으로 이 견해를 유지해 왔지만, 일본의 보수 세력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지하는 정부의 헌법 해석을 뒤집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베 총리다. 그는 자민당 간사장 시절이던 2004년 1월 “정말 우리 헌법이 이를 부인하고 있는지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며 헌법 해석 변경을 위한 논의 개시를 촉구했다. 이후 2006년 9월 총리(아베 1기 내각) 자리에 오른 뒤 ‘안전보장의 법적기반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이하 간담회)라는 전문가 연구 조직을 구성한다. 당시 간담회는 2008년 6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공해상에서 자위대와 함께 활동 중이던 미군 함정이 공격 받았을 때 △미국으로 향하는 탄도 미사일을 요격할 때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나라 부대가 공격을 받았을 때 △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 대한 후방지원을 할 때 등 4가지 경우엔 현행 헌법 아래서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그러나 1년 뒤인 2009년 8월 정권이 민주당으로 교체되며 실제 정책으로 전환되진 못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재집권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두달만인 지난 2월 중단된 1기 간담회의 뒤를 잇는 2기 간담회를 소집한 데 이어, 8월에는 현행 헌법 아래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가진 야마모토 쓰네유키 내각 법제국 장관(우리의 법제처장)을 경질하고 후임에 자신과 의견이 같은 고마쓰 이치로 전 프랑스 대사를 임명했다. <도쿄신문>은 “2기 간담회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긍정적인 견해를 가진 이들”이라며 “이들이 9월부터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12월께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아베 총리는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오는 3일 도쿄에서 열리는 미국과 일본의 외교·국방장관의 모임인 이른바 ‘2+2회의’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날 회의에서 미일 양국은 ‘미일방어협력을 위한 기본 지침’(이하 지침)에 대한 개정 작업을 시작하기로 합의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도했다. 현재의 지침은 냉전 해체 등 변화된 안보 환경에 맞춰 새로 합의된 미-일 신안보전략(1996년)을 시행하기 위해 1997년 9월 작성된 것이다. 그 이후 15년 동안 미일을 둘러싼 안보 환경에 적잖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새 지침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군 따라 자위대 활동범위 커질듯
방위상 “일 안전 관련지역으로 확대”
연립 공명당 반대…실현까진 진통 여기서 미일이 언급하고 있는 안보 환경의 변화란 사실상 중국의 부상을 염두하고 있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28일 사설에서 집단적 자위권의 본질은 ‘미일동맹의 강화’라며 “아베 총리가 이를 통해 노리는 것은 중국의 군사대국화에 대응하고 미일동맹의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군과 자위대가 한 덩어리가 돼 일본이 미국을 지원하는 게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배경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중국, 핵과 탄도 미사일 발사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북한, 사이버 테러 등 국경을 넘어선 안보환경 등의 변화” 등을 꼽았다. ‘아시아 귀환’을 선언했지만 재정 위기와 중동 사태 등으로 아시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미국도 일본이 하루 빨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이 지역에서 미국의 짐을 덜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 등도 노골적으로 일본의 재무장을 환영하는 중이다.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해 활동 범위를 세계화하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원유 수송로 보호론’이 퍼지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26일치 1면에서 일본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범위에 “동맹국에 대한 공격에 대처하는 것뿐 아니라 중동으로부터 에너지를 운송하는 해상 교통로의 안전확보 등 ‘일본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태’를 포함시키는 방침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8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 등이 봉쇄될 경우 기뢰 제거 작업 등에 일본의 소해정이 참가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더 확장시키면 일본은 원유 운송로를 따라 중동 사태,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 대만 해협 등 전세계의 온갖 분쟁에 적극 개입할 수 있다는 논의로 이어진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청 장관도 27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평화와 안전,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관계 없는 곳에까지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무제한 늘이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말을 돌리긴 했지만,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본격화되면 일본의 평화, 안전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역에는 지구 반대편이라도 자위대를 파견할 의사가 있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남은 일정은 12월로 예정된 간담회의 보고서 제출,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의 의견 조정 등이다. 그러나 현재 공명당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의견 조정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경험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안보체제의 하위 파트너라는 위치에 끼어 있는 한국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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