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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사소한 잘못에도 “무릎 꿇어”
‘도게자’, 일본서 사회 병리 현상으로 확산

등록 2013-10-09 15:04수정 2013-10-10 09:12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지구촌 화제]
드라마·영화 등에서 ‘도게자 장면’ 자주 등장
“불황 장기화가 불관용 사회 만들어” 분석
“관용하는 마음 가져야 한다” 자성론 나와
“도게자 해 주십시오. 도게자 해! 오와다.”

평범한 은행원이 상사의 불의에 맞서는 내용으로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 한자와는 권력을 이용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 직장 상사 오와다 아키라에게 자신이 당한 고통에 대한 복수의 의미에서 도게자를 시킨다. 오와다는 치욕을 이기지 못하고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결국 한자와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지난달 말 방송된 이 마지막 장면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장면의 순간 시청률은 무려 46.2%를 기록했다. <한자와 나오키> 외에도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사죄의 왕>에도 이런 도게자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지금 일본에선 ‘도게자’(土下座)에 대한 사회적인 논란이 뜨겁다. 도게자는 사죄의 뜻을 밝히기 위해 다른 이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대고 조아리는 행위다. 에도시대 다이묘(영주)의 행렬이 있을 때 서민들이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는 것에서 유래했지만, 최근엔 곳곳에서 잘못을 한 상대에게 도게자를 요구하는 일이 늘어나며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사죄의 왕>
영화 <사죄의 왕>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8일 시사 프로그램‘클로즈업 현대’를 통해 ‘범람하는 도게자’에 대한 진단을 시도했다. 일본인들이 공식 기자회견 석상에서 도게자를 하며 사죄한 것은 1996년에 발생한 야쿠가이 에이즈사건(제약회사 미도리주지가 만든 혈액약 때문에 복용자들이 에이즈에 걸린 사건)이 처음이다.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들며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회사의 경영진이 사죄의 의미로 공적인 자리에서 도게자를 하는 게 사회 관행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방송에 출연한 모리 다쓰야 메이지대학 특임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 사회의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를 잃고 불관용한 사회가 됐다는 증거”라는 분석을 내놨다. 일본 사회의 특징인 자기 책임주의가 점점 더 경쟁이 격화하는 최근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도게자라는 사회 병리적인 현상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일본 사회 곳곳에선 도게자 피해 사건이 속출하고 있다. 방송은 지하철역에서 개찰을 제대로 안한 고객을 멈춰 세웠다가 바닥에 꿇어앉아 20분이나 도게자를 하도록 강요당한 지하철 직원, 사소한 잘못 때문에 도게자를 해야했던 점원의 사연 등을 소개했다. 한 30대 남성은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뒤 상사에게 도게자를 요구 받고 회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아이와 부인의 얼굴이 떠올라 결국 이에 굴복하고 말았다”는 경험담을 털어놨다. 상대가 도게자하고 있는 장면을 휴대전화 등으로 찍은 뒤 인터넷에 올리는 일들까지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함부로 도게자를 요구하는 것은 법적 처벌도 받을 수 있는 범죄 행위다. <마이니치신문>은 8일 홋카이도에서 전날 사간 이불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는 이유로 가게 점원 2명에게 도게자를 시키고 이 장면을 인터넷에 올린 43살 여성이 강요죄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 뉴스를 본 일본 누리꾼들은 “도게자는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왠지 뒷맛이 더러운 행위다” “서로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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