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창단 9년 ‘만년 꼴찌’
올해 일본시리즈 첫 진출 ‘기염’
“지진 이긴 저력 보여주자” 다짐
감독·선수들 눈빛·자세 달라져
‘24승무패’ 다나카에 관심 집중
올해 일본시리즈 첫 진출 ‘기염’
“지진 이긴 저력 보여주자” 다짐
감독·선수들 눈빛·자세 달라져
‘24승무패’ 다나카에 관심 집중
* 라쿠텐 : 센다이시 프로야구팀
“도호쿠(동일본)의 저력을 보여주세요!”
21일 도호쿠 지방을 연고지로 하는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홈구장 ‘케이(K)스타 미야기’. 8-5로 앞선 9회초, ‘절대불패’의 에이스 다나카 마사히로(24)가 마운드에 오르자 2만5000명의 관중으로 가득 찬 야구장은 거대한 축제의 마당으로 바뀌었다.
“다나카, 이건 우리들의 꿈이야.” 관중들의 간절한 응원을 등에 업은 다나카가 뿌린 공은 상대 타자의 배트에 맞고 3루수 정면으로 힘없이 굴렀다. 아웃이 확인되자 운동장의 관중들이 함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안았다. ‘만년 꼴찌’ 라쿠텐이 상대팀 지바 롯데 마린스를 꺾고 창단 9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순간이다.
2011년 3월 도호쿠 대지진의 아픔을 간직한 라쿠텐의 선전이 일본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005년 도호쿠 최대 도시 센다이를 연고지로 창단한 라쿠텐은 지난 9년 동안 한번도 제대로 된 성적을 내보지 못한 약체 팀이었다. 창단 첫해인 2005년에는 1위와 격차가 무려 51.5게임에 이르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고, 그 뒤 7시즌 동안에도 3위 안에 든 게 단 한번뿐이었다.
패배주의에 길들여진 팀에 변화가 시작된 계기는 도호쿠 대지진이었다. 당시 주장이던 주전 포수 시마 도모히로는 대지진 직후 열린 홈구장 개막전에서 “도호쿠 여러분, 이 순간을 꼭 극복합시다. 도호쿠의 저력을 보여줍시다”라고 호소했다. 이후 라쿠텐은 거대 쓰나미의 공격에도 쉽게 물러서지 않은 끈질긴 도호쿠인들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됐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두터웠다. 라쿠텐은 지진 직후 진행된 2011년 시즌에선 5위, 지난해엔 분투 끝에 4위에 머물렀다. 한때 주니치 드래곤즈의 수호신으로 활동한 선동렬 기아 타이거스 감독의 스승이기도 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많은 관중들 앞에서 저력을 보인다고 약속한 뒤 실망만 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며 선수들을 독려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2일 다큐멘터리 ‘엔에이치케이 스페셜’에서 올해 라쿠텐이 강팀으로 거듭난 가장 큰 동력으로 선수들의 사명감을 꼽고 있다. 올해 24승 무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낸 에이스 다나카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 “우리가 (지역민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싸우고 싶다”는 글을 올려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8년 동안 활약하다 고향팀으로 복귀한 사이토 다카시(43) 투수의 사연도 훈훈하다. 그는 고향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워달라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올해 라쿠텐 마운드의 뒷문을 잠그는 철벽 수문장이 됐다.
대지진으로 집을 잃고 임시주택에서 살고 있는 스즈키 요이치(71)는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큰 위안을 받았다. 일본 시리즈에서도 꼭 도호쿠의 저력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6일 시작되는 일본 시리즈의 상대는 ‘절대강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아사히신문>은 이 승부를 “도호쿠의 꿈을 실은 라쿠텐이 거인과 벌이는 결전”이라고 묘사했다. 꼴찌팀 라쿠텐의 마지막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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