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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 ‘혼외자 차별 위헌’에 딴죽거는 자민당

등록 2013-10-23 20:30수정 2013-10-23 21:31

“법률혼 경시 풍조 우려” 이유로
연구모임 만든뒤 장기과제 돌려

혼외자 기록 의무인 호적법 ‘합헌’
차별 없애되 ‘비정상’ 기록은 남겨
혼외자를 차별하는 일본의 호적제도는 바뀔 수 있을까?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23일 “법무성이 혼외자에 대한 상속 차별을 없애려는 민법 개정안을 이번 임시국회 때 통과시키려 하고 있지만, 자민당 내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아 조정에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일본 호적은 정식 결혼한 부부 사이의 자식은 ‘장남-2녀-3남’ 같은 식으로 성별과 출생순서를 기록하고, 혼외자는 ‘남’ 또는 ‘여’라고만 표기하고 있다. 민법의 상속 규정에선, 혼외자는 정식 결혼한 부부의 자녀가 받을 수 있는 상속액의 절반만 받을 수 있다(900조 4항)고 정해놓았다. 정식 결혼한 부부에 견줘 혼외자를 명백히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위헌 소송이 잇따르자 일본 최고재판소(일본엔 위헌심판을 내리는 헌법재판소가 따로 없음)는 지난달 4일 “사회가 변해 혼외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규정이 지닌 합리성이 사라졌다”며 상속 규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일본 정부가 법 개정 방침을 밝히자 보수적인 자민당 의원들이 반대 의견을 들고 나선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23일 이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22일 열린 모임에서 자민당 의원들이 “그런 차이를 없애면 법률혼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길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을 쏟아냈다고 보도했다. 결국 자민당은 이 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별도 연구 모임을 시작하기로 해서, 이번 회기 내 법 개정은 사실상 물건너간 상태다.

일본 언론들이 이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일본 호적이 혼외자뿐만 아니라 봉건 시대 사회의 최하층민을 뜻하는 부라쿠민(부락민), 조선인·대만인 등 식민지인을 차별하는 도구로 활용돼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전 일본 호적엔 부락민을 구분하는 정보가 담겨 있었다. 지금은 정보가 사라졌지만, 주소를 활용해 부락 여부를 확인하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다.

2차 대전 종전 이전 식민지인에 대한 차별은 일본인에겐 민법·호적법을 적용하고 조선인에겐 조선 민사령과 조선 호적령 등 다른 법률을 적용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그러면서 선거권은 국적이 아닌 호적을 기준으로 삼아 ‘같은 천황의 적자’라고 치켜세웠던 조선인들에겐 선거권을 주지 않았다.

최근 일본 최고재판소는 혼외자 차별과 관련해 모순되는 두개의 판결을 내놓았다. 지난달 4일 판결에선 ‘혼외자 차별은 위헌’이라고 판단했지만, 지난달 26일엔 출생 신고서에 혼외자임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한 호적법 규정(49조 2항)에 대해선 “차별을 규정한 조항이 아니다”라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즉, 호적에 혼외자를 판별할 수 있는 정보를 남길 순 있지만 이를 이용해 상속 등에서 차별하면 안 된다는 판단이다. 눈에 보이는 명확한 차별은 없앴지만, 이질적인 존재를 파악해 기록하는 일은 계속하겠다는 결론인 셈이다.

일본 내에서도 호적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민주당 정권 시절이던 2009년 국회에선 ‘호적법을 생각하는 의원 연맹’이 결성돼 호적 제도 전반을 대수술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선거 패배 이후 활동이 위축된 상태다. 한국의 호적 제도는 양성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판단에 따라 2008년 폐지된 바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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