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청구권 이미 소멸” 주장 되풀이
‘기금 만들어 해결’ 대안에도 부정적
‘기금 만들어 해결’ 대안에도 부정적
일본의 식민통치 시기에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던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강제 동원돼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광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1일 광주 지방법원의 판결이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소송의 당사자인 미쓰비시중공업은 판결 직후 ‘항소’ 방침을 밝혔고,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도 “한-일간의 재산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 이미 해결됐다는 게 정부의 일관된 견해”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일본 주요 언론 모두가 이번 판결을 2일치 1면에서 다루는 등 큰 관심을 보였지만,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한일 양국 정부의 외교적 합의 내용을 한국 사법부가 함부로 뒤집었다는 것이다. 일본 보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산케이신문>은 이번 판결의 배경이 된, 지난 5월 대법원의 ‘한일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판결을 “부당 판결”이라고 정면 공격하면서, “한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사히신문>도 3면 ‘일-한의 이견, 커지는 난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매출이 3조엔에 이르는 기업(미쓰비시중공업) 입장에선 배상금을 내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되면 개별 청구권은 이미 해결됐다는 한-일 양국 간의 합의를 뒤집게 되어 문제가 한층 더 복잡해진다”고 우려했다.
일본 쪽에선 앞으로의 사태를 더욱 주시하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법원이 앞서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놨기 때문에 원고들의 승소가 확실시 된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한국인 원고들은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일관계뿐 아니라 두 나라의 경제협력 관계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한 기금을 만들어 이 문제에 대한 ‘연착륙’을 시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선 이는 한-일협정의 합의 내용을 사실상 번복하는 것이라며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거두지 않고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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