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구 히비야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시민 1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비밀보호법을 막아라 11·21 대집회’에서 가이도 유이치 변호사가 비밀보호법의 위험성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일 각계 반발 확산
도쿄서만 시민 1만여명 몰려
“국민 알권리 무시 법 용납 안돼”
언론·법조·학계도 반대 성명
여당, 26일 중의원 통과 시도할듯
자민당 출신 노나카 전 관방장관
“전쟁의 발소리 들리는 것 같다”
도쿄서만 시민 1만여명 몰려
“국민 알권리 무시 법 용납 안돼”
언론·법조·학계도 반대 성명
여당, 26일 중의원 통과 시도할듯
자민당 출신 노나카 전 관방장관
“전쟁의 발소리 들리는 것 같다”
“뭐가 비밀이냐고? 그게 바로 비밀이야.”
21일 오후 6시30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입법을 추진중인 특정비밀보호법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도쿄 지요다구 히비야 야외음악당으로 몰려들었다. 이날 비밀보호법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은 도쿄를 비롯해 전국 14곳에서 ‘비밀보호법을 막아라 11·21 대집회’를 열었다. 도쿄에서만도 행사 시작 전부터 집회장 안팎에 시민 1만여명이 몰려들었다. 주최 쪽에서는 “입장하지 못한 이들이 2000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이 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정부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정보를 ‘특정비밀’로 지정해 영원히 감출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가이도 유이치 변호사는 “자민당의 법안에는 무엇이 특정비밀인지 확인·감시할 수단이 없다. 시민들은 무엇이 특정비밀로 지정돼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총리가 (법안의 객관적인 감시를 하는) 제3기관 구실을 한다고? 웃기지 마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민주당의 곤도 쇼이치 중의원도 “이 법은 꼭 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시이 가즈오 공산당 위원장은 “미군기지의 피해가 심각하다고 생각해 시민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처벌받을 수 있다. 이렇게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법을 용납할 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원들의 발언이 이어지는 순간 객석에선 “웃기지 마라” “법안을 폐지해야 한다”는 함성이 이어졌다. 모임을 개최한 ‘신문노련’ ‘평화포럼’ ‘비밀에 반대하는 학자·연구자연락회’ 등은 이날 나눠준 자료에서 “핵발전 관련 정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처럼 국민의 생명과 생활에 관련된 정보도 비밀로 지정해 버릴 수 있다”고 호소했다.
비밀보호법은 핵발전 정책과 더불어 일본 정치권과 민심의 괴리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안으로 꼽힌다. <마이니치신문>의 12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59%로 찬성 의견(29%)을 두배 넘게 앞서고 있다. 법안을 이번 임시국회 때 서둘러 처리하지 말고 신중히 다뤄야 한다는 의견도 80%를 넘는다. 그뿐 아니라 일본신문협회 등 언론계, 일본변호사연합회 등 법조계, 시민단체, 학계, 여성계 모두 이 법안에 반대 의견을 밝힌 상태다.
그런데도 법안 제정 작업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민당은 최근 다함께당, 일본유신회 등과 협의를 마치고 공동 제출안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야당은 처음엔 특정비밀로 지정할 수 있는 정보를 외교·국방 분야로 한정하고, 정부의 자의적 법 운용을 막을 수 있는 제3자 기관의 감시 등의 내용을 포함시킬 계획이었지만, 자민당의 반대에 밀려 물러서고 말았다. <아사히신문>은 21일 “야당과 조정에도 법의 핵심적인 부분은 변함이 없다”며 “자민당이 25일 후쿠시마에서 지방 공청회를 연 뒤, 26일 중의원 통과를 시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드러난 시민들의 불안은 과장이 아니다. 20일 아카미네 세이켄 공산당 의원은 중의원 국가안전보장특별위원회에서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상황을 찍은 위성사진을 ‘극비 보전’을 이유로 도쿄전력에 제공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했다.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적기)는 △핵발전소 △자위대 해외 파병 활동 △야스쿠니 신사 등도 기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민당 간사장을 지낸 노나카 히로무 전 관방장관도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16일 효고현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전쟁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왜 비밀보호법이 필요한가. 비밀을 국민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숨기려 하는 게 아니냐”라고 우려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정부가 군기밀이라는 이유로 국민의 눈귀를 막고 전황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국가를 존망의 위기로 몰고 간 역사를 환기시킨 것이다.
이 법안은 일본의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후퇴시킬 위험뿐만 아니라, 미국의 공개적인 지원을 받아 추진되는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시작돼 미-일이 함께 전쟁을 수행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일본 정부가 군사기밀의 유출과 시민사회의 감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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