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의원서 야당 저지 불구 표결
범위 제한·제3기관 신설 ‘외면’
25일 공청회서도 반대 ‘압도적’
다수당 위력…여론수렴 시늉만
범위 제한·제3기관 신설 ‘외면’
25일 공청회서도 반대 ‘압도적’
다수당 위력…여론수렴 시늉만
자민당 독주의 본격적인 전조일까.
일본 자민당이 26일 중의원에서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특정비밀보호법안 표결을 강행해 통과시켰다. 12월6일까지인 이번 임시국회 기간에 참의원 통과도 이뤄질 전망이라 특정비밀을 누설한 공무원에게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이 법안이 제정을 눈앞에 두게 됐다. 특정기밀을 외교·국방과 관련된 정보로 제한하거나, 정부가 입맛에 맞지 않는 정보를 감추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제3의 기관’을 만들자는 야당의 의견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동안 일본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이 법이 시행되면 무엇이 특정비밀인지도 모른 채 정보를 얻으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되고 국민의 알권리와 취재의 자유가 위축되는 등 일본 사회의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후퇴하게 된다며 반대운동을 벌여왔다. 현재 일본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이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번 법안을 심의한 중의원 국가안전보장특별위원회(특위)는 이날 오전 9시 아베 신조 총리가 출석한 가운데 심의를 이어갔다. 전날인 25일엔 2011년 3월 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현까지 가서 공청회를 열었다. <도쿄신문>은 “공청회에선 여당이 추천한 2명을 포함한 증인 7명 모두가 법안을 폐기하거나 신중한 심의를 요청할 정도로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날 특위에서 자민당은 아베 총리에 대한 추가 질의가 끝난 직후 행동에 돌입했다. 누카가 후쿠시로 위원장한테 표결을 요청하는 제청을 제기한 것이다. 민주당은 의장석을 둘러싸고 법안 처리에 반대했지만, 표결이 강행됐다. 공동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그리고 이번 수정안에 동의한 다함께당이 찬성한 가운데 민주당 등 다른 야당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한때 자민당의 법안 협의에 응한 일본유신회는 “충분한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법안의 핵심 쟁점인 ‘제3의 기관’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치될 수 있도록 착실히 준비해 가겠다”고 발언하는 데 그쳤다. 이후 오후 5시께 공동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본회의에 긴급상정을 제안해 표결이 이뤄졌다. 여론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결국 자신의 의사를 관철한 셈이다.
아베 총리의 이런 태도는 앞으로 일본 사회의 민주주의를 질식시킬 것이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민당은 연립 여당인 공명당과 함께 정원 480명인 중의원에서 압도적 다수인 325석(자민당 단독 294석), 정원 242명인 참의원에선 134석(자민당 단독 114석)을 확보하고 있다. 자민당이 원하면 어떤 법률이든지 통과시킬 수 있는 의회 구도다.
그러나 자민당이 추진하려는 정책들은 지금까지 유지돼온 일본 사회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개정이 이뤄지면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가까이 유지돼온 일본의 안보정책이 질적으로 달라진다. 이는 중국을 자극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올해 말까지 타결을 목표로 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심각한 사회·경제적 파장이 불가피하다. 아베 총리는 협정에 참여하기에 앞서 쌀을 비롯한 중요 농산물 5개 품목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약속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일본 정부는 쌀 등 중요 농산물의 관세를 철폐하는 교섭을 이미 시작했고, 쌀 가격을 유지하려고 생산량을 조절하는 감반 정책도 5년 뒤 폐기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일본 사회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시절인 1985년 6월 특정비밀보호법안과 비슷한 내용으로 이뤄진 ‘스파이 방지법’을 폐기한 바 있다. 당시 법안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가 이번 법안 통과에 앞장선 다니가키 사다카즈 법무상이다. 그는 지난 11일 국가안전보장특별위원회에 나와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30년 동안 강화돼온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상징하는 현상으로 읽힌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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