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 고이케나가누마 가설주택 단지 집회장에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지역 주민인 오자와 마사타카(81)가 아이들에게 마술쇼를 선보이고 있다. 손이 재빠르지 않은 탓인지 마술이 들통 날 때마다 아이들이 더 즐겁게 웃어댔다.
미나미소마 가설주택단지 주민들
성탄 선물과 자원봉사자 활동에
마을과 아이들 표정 밝아졌지만
3년 전 지진에다 핵 사고로 시름
피난 간 아내·아이와 아직도 생이별
내년 시범농사도 방침조차 못정해
월 10만엔 정부 위로금으로 생활
지역별 배상금 달라 주민 갈등도
성탄 선물과 자원봉사자 활동에
마을과 아이들 표정 밝아졌지만
3년 전 지진에다 핵 사고로 시름
피난 간 아내·아이와 아직도 생이별
내년 시범농사도 방침조차 못정해
월 10만엔 정부 위로금으로 생활
지역별 배상금 달라 주민 갈등도
“와, 말이다!”
“정말 당근을 먹어요?”
지난 21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현 미나마소마시 가시마구의 고이케나가누마 가설주택 단지. 고요한 마을에 느닷없이 말울음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왔다. 올해 일곱살 된 수컷말 에스트라다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마을 어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다. 2011년 3월 도호쿠(동일본) 대지진 이후 3년. 아이들에게는 이번이 가설주택에서 맞는 벌써 세번째 크리스마스다.
“말은 겁쟁이라 큰 소리를 내면 무서워해요.” 가설주택의 회장 다카노 마사노리(35)가 아이들에게 말 타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저만치에 자전거를 버려두고 달려온 개구쟁이 세노 가이토(5)는 말에 타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야마오카 미나미(6)는 에스트라다의 등에 올라 마을 어귀까지 한바퀴 돌고 오는 데 성공했지만, 언니인 렌(9)은 몇발짝 나서기도 전에 무섭다며 말에서 내리고 말았다.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한달에 두번씩 요코하마에서 후쿠시마까지 달려와 아이들에게 학습지도 자원활동을 한 재일동포 한흥철(43)씨는 “아이들의 표정이 예전보다 많이 밝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그뿐만이 아니다. 전국에서 후쿠시마현 등 동일본 지역 주민과 아이들에게 보내는 응원 편지를 모아 전달하는 모임인 ‘키즈 레터’ 회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산타 복장으로 주민들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선물을 건넸다. 발마사지 동호회인 ‘아시모미’ 회원들도 얼룩말·곰·캥거루 따위 동물 복장으로 갈아입고 아이들에게 ‘루돌프 사슴코’ 노래를 불러줬다.
자원활동가들의 방문으로 마을의 분위기가 흥겨워졌지만, 주민들 앞에 놓인 엄혹한 현실이 달라진 건 아니다. 이곳 미나미소마시는 핵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시의 남쪽 부분은 한때 피난 지시가 내려진 20㎞ 경계구역 안에 포함돼 있다. 시의 해안은 쓰나미 피해를 입었고, 쌀농사가 주업인 농민들은 벌써 3년째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다.
30대 후반의 주민 유하라는 처음 핵사고가 났을 때 나고야시가 있는 아이치현까지 피난을 갔다가 지난해 10월 돌아왔다. 그는 부모 대부터 낙농업을 해왔다. 유하라는 “물려받은 일과 조상들의 묘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곳을 떠나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는 “현재 방사성 물질에 대한 식품 기준은 1㎏에 100베크렐이지만, 낙농조합에선 소한테 먹이는 목초의 기준을 35베크렐로 정해두고 있다. 방사성 물질 기준치를 넘으면 애써 키운 목초를 버려야 해 리스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부인과 사고 이후 태어난 두살난 아이는 방사능의 영향을 우려해 여전히 지바현에 살고 있다. 미나미소마의 농민들은 내년엔 시범적으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지만, 정말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아직 확실한 방침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주민들은 국가가 지급하는 한달에 1인당 10만엔의 위로금에 기대 살고 있다.
핵사고 이전부터 반핵 활동을 해온 사찰 세린지의 주지 오카노 사다마루는 “가장 큰 문제는 주민들이 자립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같은 후쿠시마현이라도 귀환곤란지역으로 지정된 도미오카마치와 그 옆에 자리한 가와우치무라 사이엔 배상금 액수 등에 차이가 생겨 이를 둘러싼 주민들 사이의 갈등도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를 나흘 앞둔 이날만은 모두가 어울려 한해 동안의 노고를 서로 위로했다. 마을 집회소에 모인 주민들은 핵사고로 직장을 잃은 주민 누쿠다 아키라(57)를 중심으로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 부흥사업의 주제곡인 <꽃은 핀다>(하나와 사쿠)를 불렀다. “꽃은, 꽃은 핀다/ 언젠가 태어날 그대에게도/ 꽃은, 꽃은 핀다/ 언젠가 사랑하게 될 그대를 위해.” 노래가 끝나자 주민들이 한목소리로 ‘앵콜’을 외치며 폭소를 터트렸다. 미나미소마(후쿠시마현)
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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