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참배했나
‘보편적 추모행위’ 명분 세우려
전쟁피해자 ‘친레샤’ 등도 찾아
동북아 정세 최악 국면 치달아
중국과 센카쿠 충돌 우려 커져
‘보편적 추모행위’ 명분 세우려
전쟁피해자 ‘친레샤’ 등도 찾아
동북아 정세 최악 국면 치달아
중국과 센카쿠 충돌 우려 커져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26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총리 본인의 결단으로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지난 1년 동안 ‘아베노믹스’를 앞세워 경제를 중시하는 합리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려 애썼지만, 결국 에이(A)급 전범 용의자인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한테서 물려받은 극우 성향을 감추진 못했다.
자민당의 2인자인 이사바 시게루 간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풀이했다. “아베 총리가 6년 전 (1차 내각 때) 참배를 못한 것이 ‘통한의 극치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래서 정권 발족 1년을 맞아 총리의 판단으로 오로지 평화를 염원하고 영령들을 추모하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언제 참배 소식을 전해들었냐는 질문에는 “(참배 직전인) 오늘 아침 전화를 받았다”고 답했다. 실제 24일까지만 해도 일본에선 아베 총리가 연내 참배를 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마이니치신문>이 25일치에서 “(총리가) 참배할 기미도 없고, 지금 가봤자 좋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따 아베 총리가 연내 참배를 미뤘다는 보도를 내놓을 정도였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한일의원연맹 일본 쪽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 의원 등은 이날 참배를 끝까지 만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어차피 한번 참배할 거라면 내년이면 너무 늦다. (주변국과) 관계가 악화된 지금 참배를 하는 게 좋다는 견해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아무리 자제해봐야 한국·중국과 관계 개선이 되지 않는다는 ‘실망감’을 이번 참배의 또다른 배경으로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달 아베 총리는 이병기 주일대사 면담(13일), 한일협력위원회 한국 쪽 대표단 면담(14일), 본행사 연설(15일)뿐 아니라 한-일 의원연맹 총회참석(29일) 등을 통해 관계 개선에 애쓰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런데도 관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산케이신문> 등 일본 보수세력은 “신사 참배를 자제해서 한-일 관계가 나아진 것이 있느냐”고 줄곧 비판해 왔다.
아베 총리의 이번 참배는 동아시아 정세에 매우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와 침략 및 식민 지배를 인정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고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이들 담화는 일본이 아시아 주변국들에 저지른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한 것으로 현재 한-일 관계의 초석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에 “침략에 정해진 정의는 없다”라고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런 아베 총리가 일본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행위는 더는 주변국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동중국해를 둘러싼 중-일 갈등이 극에 달해 언제 국지적인 충돌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을 상황이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끝내 삼가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자신에서 쏟아질 비난을 피하려는 듯 일왕을 위해 죽은 이를 추모하는 시설인 야스쿠니신사의 배전(拜殿)뿐 아니라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전쟁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시설인 친레샤(鎭靈社)도 참배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참배는 보편적인 추모 행위라고 주장한 셈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고도 일본을 위해 숨진 이들을 추모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 아베 총리는 1기 내각 때인 2007년 8월15일 해외에서 발굴한 일본군의 무연고 유골이 안치된 ‘치도리가후치 전몰자묘원’을 참배한 바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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