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 마스조에 압도적 표차 승리
‘탈핵’ 우쓰노미야·호소카와 2·3위
유권자 ‘탈핵’보다 ‘복지·경제’ 호응
‘탈핵’ 후보 단일화 실패도 원인
‘탈핵’ 우쓰노미야·호소카와 2·3위
유권자 ‘탈핵’보다 ‘복지·경제’ 호응
‘탈핵’ 후보 단일화 실패도 원인
일본 도쿄 시민들의 선택은 탈핵보다 복지, 즉시 탈핵보다는 점진적 탈핵이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9일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의 출구조사 결과 자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마스조에 요이치(65) 전 후생노동상이 ‘즉시 탈핵’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호소카와 모리히로(76) 전 총리와 우쓰노미야 겐지(76) 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을 압도적인 표 차로 눌렀다고 보도했다. 마스조에 후보는 98% 개표 상황에서 209만585표를 얻었다. 호소카와 후보는 94만7909표로, 97만5482표를 득표한 우쓰노미야 후보에게도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마스조에 후보는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40% 정도의 지지율로, 호소카와와 우쓰노미야 후보를 20%포인트 정도 앞서왔다.
마스조에 후보는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선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후생노동상의 경험을 살려 도쿄 도민들의 삶을 편하게 해드리겠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맞아 세계에 도쿄의 매력을 발신하겠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마스조에 후보가 (의료와 복지에 관심이 많은) 노령층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일본의 탈핵 세력한테 적지 않은 고민과 숙제를 안길 전망이다. 일본에서는 3·11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사회 전체적으로 탈핵을 요구하는 요구가 분출했다. 사고 6개월 뒤인 2011년 9월 도쿄 메이지공원 집회에선 일본 기준으로는 기록적 인파인 6만명이 결집했고, 매주 금요일 오후 총리 관저 앞에서 진행해온 반핵 집회도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목소리를 결집해 수도 한복판에서 자민당으로 대표되는 핵발전 유지 세력과 건곤일척의 일합을 겨뤘지만 패하고 말았다. 호소카와 전 총리를 도와 적극적인 선거운동에 나선 고이즈미 준이치로(72) 전 총리의 말대로 “원전 없이도 일본이 발전할 수 있다는 집단과 원전 없이는 안 된다는 집단 사이의 싸움”에서 탈핵 세력이 패한 셈이다.
일본 언론들은 선거전이 시작된 뒤 탈핵 문제가 애초 예상보다 선거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요미우리신문>의 2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도쿄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의료와 복지정책(선택률 84%)을 꼽았고, 방재 대책(81%), 경기와 고용정책(75%) 등이 뒤를 이었다. 핵발전 등 에너지 정책(61%)은 5위에 그쳤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투표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준비 부족으로 탈핵이 주요 쟁점이 되지 못하게 하려는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엔에이치케이>는 “유권자들이 즉시 탈핵보다는 점진적 탈핵을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사분오열돼 있는 야당 세력이 자민당-공명당 연립 여당의 조직력을 당해내지 못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민당은 선거 초반 마스조에 후보가 승기를 잡는 모습을 보이자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적극적인 거리 유세에 나서며 지지율 굳히기에 나섰다. 이에 견줘 민주당은 호소카와 후보를 ‘자율적으로 지지한다’며 한발 물러앉았고, 민주당의 주요 지지 세력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는 오히려 마스조에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호소카와 후보와 우쓰노미야 후보가 단일화를 통한 시너지를 내지 못한 점도 패배의 중요 원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긍정적인 기여도 적지 않다. 아베 정권이 애초 1월에 확정하려던 ‘에너지 기본계획’을 도쿄도지사 선거 이후로 미루는 등 탈핵 문제를 좀더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정황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도 “원전의 즉시 중단은 어렵지만 되도록 원전의 범위를 낮춰 가겠다”고 탈핵의 큰 방향엔 동의한다는 견해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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