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은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방사능 오염수 유출 등 고통이 여전한데도 지난달 도쿄 도지사 선거는 ‘즉시 탈핵’ 세력의 패배로 끝났다. 그렇더라도 탈핵을 향한 일본 사회의 도전이 끝난 건 아니다. <한겨레>가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도시 만들기’ 기치를 내건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의 노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의 탈핵 집념이 담긴 ‘에스비(SB)에너지’의 활약 등을 중심으로 탈핵을 향한 일본 사회의 도전을 2회에 걸쳐 현장에서 전한다.
‘솔라-애그리 파크’ 가보니
6일 오전, 일본 후쿠시마시를 출발한 자동차가 국도 115호선을 타고 동진했다. 한시간 반쯤을 달려 후쿠시마현 동북부의 미나미소마시 하라마치 지구에 닿으니 바다가 한뼘 너머 지척이다. 쓰나미로 건물이 쓸려내려간 빈터에 태양광 패널과 농업용 비닐하우스가 나란히 붙은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2011년 3·11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미나미소마에서 처음 완공된 태양광 발전소인 ‘미나미소마 솔라-애그리 파크’(이하 공원)다.
인구 5만2000명(사고 이전 7만1000명)에 불과한 소도시 미나미소마의 ‘거대한 도전’이 일본 사회 전체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월 말 재선에 성공한 사쿠라이 가쓰노부 시장의 지휘 아래 핵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도시 만들기에 나선 덕분이다. 시는 지난해 7월 내놓은 ‘환경미래도시계획’에서 2020년까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65%, 2030년엔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시장의 야심찬 계획에 지역 주민의 탈원전 열망이 힘을 보탰다. 공원을 만들고 운영하는 한가이 에이주(60) 대표는 3·11 핵사고를 일으킨 도코전력의 임원이었다. 그에게 태양광 발전소를 만든 이유를 묻자 11살 때 할아버지와 함께 한참 공사 중이던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를 방문한 기억을 꺼내놓았다. 한가이 대표는 “어린 시절 원전 건설 현장을 방문한 강렬한 기억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1978년 도쿄전력에 입사했다. 당시엔 원전을 만들어 일본에 전기를 공급하는 게 사명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향 미나미소마를 파괴한 핵사고가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 2010년 6월 회사를 퇴직한 그는 사고 뒤 도쿄전력의 자회사에 사장으로 취임할 수 있는 편한 길을 버리고 아이들이 찾아와 재생가능에너지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발전소 겸 체험학습 시설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내가 그랬듯 아이들이 이곳에서 재생가능에너지와 관련된 체험학습을 통해 배우는 게 있을 것”이라며 “원전 사고 복구엔 시간이 걸리는 만큼 후쿠시마의 부흥에 공헌할 인재를 육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만으로
도시전체 전기사용량 충당계획
건물 쓸려간 빈터에 태양광공원
수경재배·학생 교육용으로 활용
공원의 발전 용량은 500㎾로 크진 않다. 넓이 2.4㏊의 터에 자리한 2016개의 태양광 패널이 생산한 전기가 나란히 서 있는 농업용 비닐하우스에 공급된다. 이곳에선 상추 등 채소를 수경재배해 현내 매장에 출시한다. 남은 전기는 1㎾당 37.8엔의 고정가격에 도후쿠전력에 판매한다. 한가이 대표는 “현재는 (쓰고 남은 전기를 팔아) 이익을 내고 있지만, 돈이 아니라 학습을 위한 시설이라 더 확장하지는 않을 것”이리고 말했다.
공원에서 아이들은 태양광·수력 등 다양한 재생가능에너지의 생산 원리를 배운다. 태양광 패널 6개를 이어 붙인 1500W짜리 미니 발전소는 태양이 구름에 가려 있을 때는 발전량이 42.1W에 불과했지만, 구름이 조금씩 걷히자 이내 최대 발전량인 1409.1W까지 올라갔다. 공원의 교육 담당인 아다치 다카히로가 패널의 방향을 해가 떠 있는 동남쪽에서 서쪽으로 바꾸자 발전량은 곧 699.3W까지 줄었다. 아디치는 “이를 통해 자연을 이용한 에너지 만들기가 쉽지 않은 작업임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현내 초중학교 학생의 4분의 1인 800명이 이 공원을 찾아 체험학습을 했다.
이밖에도 미나미소마시는 도시바와 시가 지정한 연안부 지역에 원자로 1기(100㎿) 규모의 태양광 발전시설을 만들기로 2012년 6월 협정을 맺었다. 가시마·하라마치구 등 3곳에서 총 70㎿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해안 지역엔 9400㎾급의 풍력발전소 2곳도 짓고 있다. 가시마구청 등 시내 16개 공공기관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과 축전시설도 순차적으로 만들고,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는 가구에는 해마다 250가구씩 보조금도 지급한다. 이에 힘입어 시내 곳곳에서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건물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공원엔 직경 10m의 큰 원 안에 후쿠시마현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지도에 오렌지 색으로 표시된 곳이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소를 갖춘 곳이다. 아다치는 “오렌지색이 칠해진 곳이 현내 59개 시정촌(한국의 읍면동) 가운데 아직 14곳뿐이다. 지도를 모두 오렌지색으로 채우는 게 우리의 꿈”이라고 말했다. 미나미소마(후쿠시마현)/
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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