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마현 조선인 추모비
기억도 반성도 잊은 그들…화해의 공든탑 무너질라
일 시민단체·총련·민단 합심해
강제동원 피해자 기리려 세워
일본 우익단체들 철거 청원에
현의회 동조…본회의 통과될듯
일 시민단체·총련·민단 합심해
강제동원 피해자 기리려 세워
일본 우익단체들 철거 청원에
현의회 동조…본회의 통과될듯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12일 오전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에 자리한 시민공원 ‘군마의 숲’. 공원 후문에서 3분쯤 걸으니 저만치 일본 우익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군마현 조선인·한국인 강제연행희생자 추도비’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동행한 리화우 군마 조선인강제연행 진상조사단 사무국장은 “일본 시민사회와 총련·민단이 오랜 시간 힘을 합쳐 만든 추모비가 일본 우익들의 공세에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며 “이 비를 지키는 것은 한-일간 대립이라는 민족 간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양심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군마현에 추모비가 세워진 것은 해방(일본의 패전) 50주년을 맞던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마 시민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던 이노우에 데루오를 중심으로 ‘전후 50년을 묻는 군마 시민행동위원회’가 결성됐다. 이들은 50주년 행사를 마친 뒤 과거의 불행을 극복하고 미래의 화해로 나아가기 위해 조선인·한국인 강제동원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위령비를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본 시민들의 호소에 공감한 재일 조선인들도 민단과 총련이라는 이념의 벽을 넘어 이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추모비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현 소유지에 비를 세우면서 보수 성향이 강하기로 이름난 군마현과 비문을 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긴 토론 끝에 “과거 일본이 조선인에 대해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입한 역사적 사실을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비문이 확정됐다. 비는 2001년 6월 현 의회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 2004년 완성됐다.
하지만 2012년부터 우익 단체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새로운 일본을 생각하는 군마의 모임’ 등 우익 단체들은 매년 4월 추모비 앞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에서 재일 조선인 단체들이 △일본의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 문제 등을 거론하며 일본 정부를 비판한 점을 구실로 삼아 “이런 활동은 비를 건립할 때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정치적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자민당 등 보수 성향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군마현 의회 산업경제토목상임위원회는 지난 9일 이 비를 철거해 달라는 우익 단체들의 청원을 채택했다. 청원안은 16일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지만,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에서 활동하는 가미가키 히로시(77)는 “위안부나 고교 무상화 문제 등은 유엔(UN)에서도 일본 정부에 시정을 권고하고 있는 인권 문제이지 정치 문제가 아니다”며 “이런 청원이 채택되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에선 “아시아 국민들과 진정한 우호와 연대의 관계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부당한 공격에 굴하지 않고 비를 지켜 나가겠다”는 항의문을 현과 현의회에 제출한 상태다.
다카사키(군마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charisma@hani.co.kr
군마현 조선인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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