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20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제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고노 담화 작성 경위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고노 담화’ 검증 결과 발표, 왜?
외교 불문율까지 깨고
고노 담화 핵심 가치 훼손
위안부 강제 연행 확인 불가 판단
후속 조처 ‘여성기금’ 내세워
“법적 보상은 끝났다” 재차 강조
외교 불문율까지 깨고
고노 담화 핵심 가치 훼손
위안부 강제 연행 확인 불가 판단
후속 조처 ‘여성기금’ 내세워
“법적 보상은 끝났다” 재차 강조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맹렬한 반발이 불 보듯 뻔한 1993년 ‘고노 담화’에 대한 검증 조사를 왜 벌인 것일까.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과 군의 개입을 인정한 고노 담화는 일본이 지난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허심탄회하게 반성한 몇 안 되는 드문 사례로 꼽힌다. 그와 동시에 <산케이신문>과 일본유신회 등 일본 우익들의 눈에는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수치로 여겨져 왔다.
이런 팽팽한 대립 속에서 지난 2월20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이시하라 노부오 전 관방 부장관(고노 담화 작성의 실무 책임자)은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국과 의견을 조정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내놓았다. 그는 이를 폭로한 이유에 대해 “고노 담화를 통해 해결된 한-일 간의 과거사가 최근 다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체 없이 담화에 대한 검증에 나선다.
애초 담화에 대한 검증을 지시한 아베 총리는 담화 자체를 수정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태는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후 한-일 역사 갈등을 다루는 미국의 태도가 한국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베 총리는 “(내) 정권 기간엔 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소신을 꺾었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다행이다”라고 밝히면서 지난 3월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일본 언론들은 이후 ‘고노 담화’ 문제는 이제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의 검증을 강행했다. 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긴 했지만, 위안부 문제를 통해 국제 무대에서 일본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공세를 꺾어야 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방식은 이날 공개된 보고서에서 확인되듯 담화 작성 기간에 한-일 간에 이뤄진 물밑 협상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었다. 고노 담화 작성 과정에서 일본이 한국에 ‘선의’를 보였다고 주장하면서,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등 추가 조처를 요구하는 한국의 주장을 꺾으려는 계산이 담겼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은 이번 보고서를 고노 담화에 대한 사실상의 ‘부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이 외교상의 불문율을 깨고 양국 간의 조정을 낱낱이 공개하며 담화의 핵심 가치를 부정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는 담화의 핵심 쟁점인 위안소 설치 과정에 일본군이 관여한 문제에 대해 일본은 “군 당국의 의향을 받은 업자”에 의해 이뤄졌다고 주장했지만, 한국은 ‘지시’라는 단어를 요구해 결국 ‘요청’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고 검증 보고서는 밝혔다. 또다른 쟁점인 강제성 부분에 대해서도 일본은 “(업자의) 감언, 강압 등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다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한국의 반대를 반영해 “감언, 강압 등 전체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도 다수 있다”는 정도의 타협안을 택했다고 일본 쪽은 주장했다. 고노 담화가 과거에 대한 일본의 철저한 반성에 기초한 것이 아닌, 외교적 협상의 결과였다고 스스로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이어 일본 정부가 1995년 6월 고노 담화의 후속 조처로 ‘아시아여성기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에 “한-일 간의 법적인 보상의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 그 때문에 일본이 취하는 어떤 조처도 법적 보상이 아니다”라는 뜻을 전했다고 강조했다. 결국 위안부 문제는 1993년 고노 담화와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으로 해결됐고, 한국도 이에 동의했다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한편, 이번 조사를 진행한 다다키 게이이치 전 검찰총장은 “가능한 한 공정한 입장에서 검정했다. 한·일 양국이 (고노 담화 작성 당시) 위안부 문제를 극복해 새로운 미래 지향의 일-한 관계를 만들려 했다”고 이번 조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일 양국의 불신의 골만큼 이번 보고서를 둘러싼 양국의 해석 차이도 화해하기 힘든 깊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일본 ‘고노 담화’ 검증 보고서가 공개한 한-일 조율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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