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관계 전문가 박정진 일 쓰다주쿠대 교수
‘북-일 회담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북은 현실화될까?’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으로 상징되는 동아시아의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최근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것은 북-일의 급속한 접근이다. 북-일은 지난 5월 말 ‘북한이 납치자 문제를 포괄적으로 조사하는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를 가동하는 시점에 일본이 독자적인 제재 조처를 해제한다’는 스톡홀름 합의를 내놓은 데 이어, 4일에는 각각 이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바 있다. 이로 인해 북-일은 2002년 9월 평양선언 이후 12년 만에 양국 간 국교 정상화를 위한 첫번째 난관을 성공적으로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박정진 일본 쓰다주쿠대학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북-일 간의 급속한 접근에 대해 “최근 변화는 한-일과 북-중 관계의 악화 등 주변 변수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북일 쌍무적 관계의 자체적인 동력에 의해 움직인 측면이 크다”며 “북-일 관계를 독립적인 변수로 좀더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이번 조사를 통해 납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를 내놓을 가능성이 커 9월께 아베 총리의 방북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이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북-일 양국에 전달해야 하지만, 한-일 관계와 남-북 관계 모두가 악화돼 있어 효과적인 견제 또는 중재가 불가능한 비관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2009년 도쿄대학에서 북-일 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 분야의 전문가다.
박정진 일 쓰다주쿠대 교수
북 특별조사위 성과 낼 가능성 커
아베 방북해 정상회담 이뤄질듯
한국 북·일에 영향력 없어 비관적 -최근 북-일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이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경험에 비춰서 현재 정세를 분석하는 습관이 있다. 현재 북-일 관계뿐 아니라 전체 동아시아 정세가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한-중 정상회담이 북한을 뛰어 넘고 진행되는 등 한-중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일본과 접근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북-일 관계 나름의 운동력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북-중의 경제관계가 결정적으로 망가지지 않는 한, 굳이 현재의 시점에서 북한이 현금(경제재제 해제)을 목적으로 일본에 이렇게 접근할 이유가 없다. 그 때문에 북-일 관계의 변화 자체를 (독립적인 변수로) 좀더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북-일의 접근이 갑작스런 변화라는 느낌이 든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2002년 9월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북으로 평양선언이 발표됐다. 그 직후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양국 간 제12회 국교 정상화 본회담이 있었다. 그런데 ‘고이즈미의 방북 이후 납치 문제가 크게 부각이 되면서 국교 정상화 본회담이 정지됐다. 그로 인해 북-일 관계가 정지됐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그 간 북일 간 본 회담의 의제는 ‘북일국교장상화를 위한 작업부회(Working group)’에서 논의되어 왔다. 작업부회의 설치와 운영은 6자회담의 합의사항이다. 이는 북-일 국교정상화 문제가 ‘북핵 문제’라는 틀 속에 위치해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회의구조는 이미 기능정지 상태에 있다. 반면 납치문제를 의제로, 북일 양국은 2차례의 정상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수준의 공식 회담, 즉 정부간 회담, 실무자급 회담, 하이레벨회담, 포괄병행회담 등 을 전개해 왔다. 최근에는 북일 평양선언 당시의 비공식 접촉루트도 부활시키고 있다. 베이징 회담 이후에는 양국 간 핫라인까지 설치되지 않았나? 물론 납치문제는 북일교섭과 6자회담을 교란시켜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보면, 납치문제가 있기에 북일 양국은 자신들만의 의제로 만날 이유가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납치문제 이상의 것 들이 논의되고 있다. 결국 과거엔 (6자회담 등) 국제적인 틀 속에서 북-일 관계가 움직였지만 지금은 양국 간의 쌍무적인 이유에서 북-일 관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일관계의 변화에 대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고,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중재이든 개입이든 끼어들 여지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 -북-일 국교정상화를 가로막는 큰 틀은 북핵 문제다. 북-일이 이런 제약 속에서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을까. “북일관계와 북핵문제를 반드시 그렇게 볼일은 아니다. 북한은 2002년 평양선언 때 미사일 발사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연장했다. 또 2009년 11월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가 2002년 평양선언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전 총리의 정상회담 회의록을 특종보도한 일이 있다. 회의록을 보면 의외로 당시의 주요의제는 북한의 핵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일본과 러시아를 포함한 다국 간 논의방식을 처음으로 제안하고 있고, 이를 김정을 위원장이 받아들이는 취지의 발언들이 있었다. 이것이 이후 6자회담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있다. 핵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북-일 국교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도식이 꼭 맞는 건 아니라는 게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는 예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현재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이 북한과 소통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존재감을 갖길 원한다. 그래서 일본이 북한과 북핵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를 원한다. 북한과 안보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이 일본 입장에서는 결정적인 진전이다. 그러나 현재 북-일이 이런 논의까지 나아간 상태는 아니다.” -3일 공개된 북한의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은 어떻게 평가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5월 말에 공개된 스톡홀름 합의문의 내용이다. 합의문을 보면 2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포괄적 해결’을 내세운 점이다. 납치 문제에 플러스 알파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납치 문제뿐 아니라, 재일동포 북송자 가족(일본인 처), 해방직 북한잔류 일본인 유골 문제등으로 카드를 불려놓았다. 즉, 북한은 카드를 불려 놓고 시간 조절을 해가며 자기 페이스로 가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발견된 생존 일본인의 ‘즉각 귀국’이다. 합의문에서 ‘생존자가 발생되는 경우 귀국시키는 방향에서 거취문제를 협의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북한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납치 문제에 대한 기존 북한의 입장은 (일본으로 귀환한 5명을 빼고) ‘8명 사망, 4명 미입국’이라는 것이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으로 이해되기 까지 했다. 그런데 합의문에 추가 귀국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는 북한의 기존의 입장이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합의문에 이 정도의 내용을 담았으니 결과는 이미 나온 것으로 본다. 일본 입장에서도 이는 중요하다. 현재 아베 총리에게 필요한 것은 추가적인 납치 피해자와 직접 방북을 통해 이들을 데려오는 퍼포먼스다. 일본 정부가 그 가능성을 인식하지 않고 움직였다고는 보기 어렵다” -북한은 총련 본부 건물과 만경봉호의 해결도 원하고 있는데. “최근 일본 텔레비전에서 재일동포 북송자 문제가 특집으로 다뤄지고 있다. 북한은 ‘포괄적 해결’이라는 입장에서 납치문제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조사 성과를 먼저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1959년 12월부터 시작된 북송사업으로 9만 명이 넘는 재일동포가 북한으로 이동했고, 그 중 일본인 배우자를 비롯한 일본인 국적자가 7000명 가까이 된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이들의 고향 방문 요청을 무시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방일을 허용하게 되면 도항 문제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경봉호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총련 본부 문제는 그보다는 더 어렵다. 그렇지만 이미 법원의 매각 작업을 일시 정지했다는 구체적인 성과가 있었다. 북한은 이번 북-일 협상을 국교 정상화를 위한 본회담으로 끌고 가려 한다. 이를 위해 총련 건물 문제를 해결해 총련의 준 외교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려 시도할 것이다. 그래야 북-일 간의 공식적인 외교 루트가 열리고, 북일 회담의 필요성도 커지게 된다. 반면 일본은 납치 문제만을 해결하는 일회성으로 끝내고 싶어 한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회담이 진행될수록 일본의 대응은 유동적이 될 것이다. -북-일 국교 정상화를 가로 막는 또 다른 문제는 일본 내의 여론이다. “내가 처음 일본에 온 것이 2002년이다. 2002~2004년의 상황을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당시 북한에 대한 일본 여론은 일종의 신드롬이었다. 텔레비전을 켜기만 하면 한국의 ‘욘사마’와 북한의 ‘쇼군사마’(장군님,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양사마가 매일처럼 나왔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납치문제를 둘러싼 여론의 압력은 상당히 경감된 것이다. 또 납치 문제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가족회와 이들을 지원하는 구출회가 분리됐고, 가족회도 분열됐다. 그래서 교섭을 해야 데려올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여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물론 현재에도 반북 여론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2002년의 그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두번째로, 현재 일본 정부가 말하는 납치 문제의 최종 해결은 ‘전원 구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과 송환’ 등이다. 이것은 협상과 여론을 의식한 레토릭에 불과하다. 결국 납치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결이 뭔지’를 재정의해야 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납치 문제에 대해 가장 엄격했던 아베 총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은 이와 같은 결단을 절대 내놓을 수 없다. 세번째로, 8월 말~9월 초에 북한이 1차 조사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북-일 양국이 발표했다. 북한이 어떤 성과를 내놓아도 일본 여론은 절대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여론을 납득시키기 위한 조사는 조사결과가 아니라 조사과정에서의 투명성이다. 조사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대표단이 추가적으로 현장에서 직접 검증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을 하려면 2002년 이후 중단된 재13차 북일 정상화 본회담이 재개되어야 한다. 12년 전 제12차 본회담 재개와 비슷한 패턴이다. 북한이 노리는 것은 이점이 아닌가 한다. 납치 문제는 북-일 정상화 회담을 가로막는 변수가 아니라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키가 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주목해야 하는 변수는 뭘까. “조사결과가 나올 9월까지의 국면이 중요하다. 최근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연초에 적십자 회담이 있었고, 그 다음에 국장급 회담이 이뤄졌고 정부 간 회담을 거쳐 4일부터 조사가 개시됐다. 8월에 미얀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일 외교장관 회담으로 격상될지 주목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성사되면 9월 아베 총리의 방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흐름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때와 완전히 똑같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9월 임시국회를 전후로 미-일 가이드라인을 개정해야한다. 소비세를 10%로 올리는 문제도 결정해야 한다. 뒤이어 오키나와 선거도 있다. 내년으로 넘겨서는 안될 문제들이다. 내년에는 통상국회와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모두 아베정권의 지지율을 떨어뜨릴 요인들이다. 아베내각의 지지율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내각결정하면서 이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면 전환용 카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일본은 9월에 집착할 것이다. 북한이 국교정상회 본 회담을 의도한다면 일본의 이러한 사정을 무시하기 어렵다. 아베 총리가 현재 9월에 외유를 잡지 않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가 어딜 간다면 북한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전무한 상황이다. “현재 정부는 현재의 북일관계에 대해 중재를 해야 할지 견제를 해야 할지 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판단을 해도 할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선 남북 관계가 중요하고, 일본을 견제하려면 한-일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이런 기본이 전혀 안 되어 있다. 남북관계 회복 없이 중국만을 통해 북한 핵전략을 바꾼다는 것과 한-일 관계 회복 없이 북-일 회담에서 효과적으로 한-일 공조를 유지한다는 생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일본이 9월에 혹시 아베 총리의 방북 등 뭔가 구체적인 변화가 있을 때 한국을 의식하기는 하겠지만, 한국의 견제는 미-일 간의 협의를 통해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 할 것이다. 한국의 대외정책의 기본 축은 북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을 둘러싼 급속한 변화 속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적어도 북일관계에 대한 한국외교는 실종된 상태이다.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나? 현재로서는 비관적이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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