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유족 박남순(오른쪽 두번째)씨 등이 한국인 강제합사를 철회하라는 내용이 담긴 펼침막을 펼치려다 일본 경찰이 제지하자 항의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 유족 문전박대
변호인단의 설명 요청도 거부
변호인단의 설명 요청도 거부
“70년을 기다린 사람이야. 왜 이래!” “지금 재판을 하는 원고와 피고 입장이기 때문에 대화에 응할 수 없습니다.”(야스쿠니신사 관계자)
10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신사 신문 앞. 야스쿠니신사에 강제 합사된 부친의 합사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신사를 찾은 유족 박남순(71)씨 일행의 발걸음은 신사 쪽의 강력한 거부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선친의 유골이 왜 유족들의 사전 동의나 사후 통보도 없이 신사에 합사됐는지 알려달라는 유족들의 외침은 “현재 재판중인 사안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는 신사의 벽에 부닥쳐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야스쿠니합사철폐 원고단의 오구치 아키히코 변호사가 “멀리 한국에서 유족이 직접 찾아왔는데 좀더 성의 있는 대응을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신사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지난 9일 ‘야스쿠니에 강제 합사된 한국인들의 이름을 신사의 명부(영새부)에서 삭제해 달라’는 야스쿠니합사철폐 2차 소송 1차 변론이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진행됐다. 1차 변론을 마친 일본 변호단은 “아버지가 신사에 합사된 경위를 알고 싶다”는 유족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신사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신사 쪽은 9일 설명 요청을 한 차례 거부한 뒤 10일 유족들이 직접 현장을 찾아 다시 한번 부탁을 했는데도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씨의 아버지 박만수(1920년생)씨가 일본군에 입대한 것은 박씨가 어머니 뱃속에서 아홉달이 되던 1942년이었다. 남양군도(남태평양 지역)로 배치된 그의 부친은 입대한 지 2년이 채 못 된 44년 2월 브라운섬에서 전사했다. 올해는 박씨의 부친이 숨진 지 70주기가 된 해다. 박씨는 “할머니가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평생 동안 대문을 닫지 않았고 살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결국 신사 앞에서 발길을 돌리고 만 박씨는 “신사의 대응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주변을 막아선 경찰들에게 “아버지를 신사에 강제 합사했으니 내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만 빼내면 신사에 오라고 초대를 해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을 이기지 못한 그가 몸부림을 치자, 일본 경찰은 “지금 나를 두번 때렸다”고 경고했다. 이에 원고단과 재판을 지원하는 일본 시민들은 “유족에게 예의를 지키라”고 항의하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참배 이후 아시아 역사 갈등의 진원지로 자리한 야스쿠니신사는 합사 철회를 요구하는 한국인 유족들의 마음에도 적잖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 재판의 2차 변론은 11월5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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