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번화가 시부야 거리.
일본 경찰, 신분 감추고 접근해 ‘사이버 계도’
4월 이후 여학생 90여명 계도, 남성 6명 적발
4월 이후 여학생 90여명 계도, 남성 6명 적발
“○○씨(인터넷상 별명)죠”(남성)
“네, 맞아요.”(10대 소녀)
지난 5월 하순 저녁, 일본의 최대 번화가인 도쿄 제이아르(JR) 신주쿠역 개찰구 앞.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을 짓고 있던 한 남성이 교복을 입은 채 접근해 오는 10대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남성이 소녀의 얼굴을 살피며 “몇살이냐”고 나이를 묻자, 소녀가 “17살인데요”라고 답했다. 중년의 직장인 남성과 10대 소녀 사이에 ‘원조교제’가 이뤄지려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사태는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됐다. 남성이 경찰 수첩을 펼쳐 자신의 신분을 밝혔기 때문이다.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 여학생에게 경찰관은 “인터넷에 원조교제를 한다는 글을 올리면 안된다”고 타이르기 시작했다. 결국 소녀는 현장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경찰 보호시설로 향했다.
<도쿄신문>은 21일 인터넷에 “원조교제를 하고 싶다”는 글을 올린 10대 여학생들에게 신분을 속인 채 접근해 현장에서 단속·계도하는 일본 경찰의 ‘사이버 계도’ 사업이 적잖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일본 경시청은 지난해 10월 이후 도서부 외의 전 경찰관서의 청소년 계도 담당자들에게 스마트폰을 제공해 이 같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로 인해 올 4월 이후 20일 현재까지 모두 90여명의 여학생을 계도하고 6명의 성인 남성을 적발하는 등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날 경찰에 붙들린 여학생은 남성에게 “17살”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론 만 15살(고등학교 1학년)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옷값과 휴대전화 요금을 마련하기 위해 스마트폰 앱 게시판 등에 ‘원조교제 가능한 사람’ ‘35(3만5000엔, 약 36만원)’ 등의 글을 올려 “지난해 말 이후 10번 이상 원조교제를 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선 중년 남성이 10대 여학생들에게 용돈을 주고 성관계를 맺는 이른바 원조교제가 커다란 사회 문제로 부각돼 왔다. 게다가 최근엔 여학생들에게 용돈을 주고 같이 산보를 하거나 식사를 함께하는 ‘제이케이(JK·조시 코코세, 즉 여자 고등학생을 이르는 말) 산보’ 등의 변칙적 원조교제도 시작돼 최근 당국의 본격적인 단속이 시작된 바 있다.
<도쿄신문>은 “현장에서 경찰에게 잡힌 여학생 가운데는 전에 특별한 사고를 친 적이 없는 아이들도 많아 연락을 받고 찾아온 부모들이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일본 경시청 소년육성과 담당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원조교제나 속옷 판매를 하기 쉬운 환경이 되고 있다. 가족들이 자녀의 스마트폰에 유해 정보를 차단할 수 있는 필터링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깔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일본 내각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휴대전화 가운데 유해 사이트 제한 필터링 프로그램이 설치된 것은 중학생은 61%, 고등학생의 경우 4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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