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노다 기이치 전 일본 참의원 부의장.
쓰노다 기이치 전 일본 참의원 부의장
“요즘 정치가들 전쟁 반성 안해
철거반대 여론, 찬성보다 3배 많아
재판 통해 철거 막아낼 것”
“요즘 정치가들 전쟁 반성 안해
철거반대 여론, 찬성보다 3배 많아
재판 통해 철거 막아낼 것”
일본 군마현의 작은 추모비가 ‘우경화’한 일본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주목 받고 있다. 2004년 일본 시민들이 역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담아 만든 ‘군마현 조선인·한국인 강제연행희생자 추도비’가 일본 우익들의 집요한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철거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 비를 만들고 관리해 온 일본 시민단체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이하 모임)의 쓰노다 기이치(77·사진) 공동대표(전 일본 참의원 부의장·변호사)는 24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정당한 역사 인식을 부정하려는 현재 일본의 풍조가 추모비 철거의 배경에 있다”며 “예전 일본인의 마음엔 지난 전쟁에 대한 반성이 있었지만 요즘 정치가들에게선 그런 인식을 찾을 수 없다. 매우 우려스런 현실”이라고 말했다.
-추모비가 만들어진 지 10년 만에 철거 위기에 놓였는데.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또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한반도 사람들을 강제 연행했다. 군마현에서도 6000명 정도가 노동을 강요당했고, 중노동 끝에 죽은 이들도 많다. (패전 50주년을 맞는 1995년 무렵부터)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잘못을 거듭하지 않기 위해 군마현 내에 있는 강제연행 장소 등을 하나하나 검증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 후속 작업으로 (1998년 9월부터)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일본의 반성 위에서 한반도와 우호 관계를 만들자는 취지로 비 건립 운동이 시작됐다. 2004년 4월 비가 완성돼 성대한 제막식도 열었다.”
그러나 2012년께부터 일본 우익단체들이 매년 4월 비 앞에서 열리는 추도행사 때 재일 조선인 단체들이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점들을 들어 비의 철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현의회는 지난달 비를 철거해 달라는 우익 단체의 청원안을 채택(<한겨레> 6월13일치 15면)했고, 현 정부는 22일 ‘비의 설치 허가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전해왔다.
-비를 없애려는 운동이 발생한 사회적 배경은 뭔가.
“넷 우익(인터넷 우익) 등 일부가 ‘종군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강제연행 등이 없었다’며 사실을 왜곡하는 현상이 생겨났고, 일부 정치인들이 이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또 아베 정권이 등장해 고노 담화(1993년)를 검증하는 등 정당한 역사 인식을 부정하려 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풍조가 배경에 있지 않나 싶다.”
-처음 비를 만들 땐 현의회와 현정부의 동의를 얻었을 텐데.
“그렇다. 당시에도 자민당이 현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었지만, 당시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현 소유지인 ‘군마의 숲’ 공원에) 비를 설치하는 청원안에 찬성해줬다. 비문 작성 과정에서도 일본 정부, 군마현, 시민단체 등 3자가 참여해 의견을 모았다. 결과적으로 좋은 비문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현의회의 젊은 의원들이 이 비가 만들어진 역사적인 경위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그들의 자민당 선배들은 모두 양식을 갖고 대응했고, 전쟁을 반성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정치인들은 전쟁에 대해 모른다.”
-앞으로 전망은.
“우리는 철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방침이니 재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모두 비 철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 언론의 조사를 보면, 비 철거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찬성보다 3배 정도 많았다. 지금 같은 정치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 이어지진 않을 것이고, 그렇게 놔둬서도 안된다. 집단적 자위권 허용 등 최근 일본의 풍조에 대해서는 싸워야 한다.”
마에바시(군마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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