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일본 홋카이도 북서부 누마타초의 사찰 에이토쿠사에서 오정자씨가 이곳에 70년간 보관돼 있던 아버지 고 오일상(1906~1944)씨의 유골을 살펴보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딸 오정자씨
홋카이도 사찰서 아버지 유골 찾아
유골 반환 도운 일본 시민단체 덕
“일본정부, 유족들에게 사과해야”
홋카이도 사찰서 아버지 유골 찾아
유골 반환 도운 일본 시민단체 덕
“일본정부, 유족들에게 사과해야”
“아버지, 저 왔습니다. 아버지요, 이제 일본에 있지 말고 저랑 같이 부산 갑시다.”
오정자(76)씨의 눈앞에 놓인 유골은 한 옴큼이었다. 유골함을 두르고 있던 흰 천을 벗겨내고 상자의 뚜껑을 뜯어내니, 유골과 검은 재가 섞인 물질이 눈앞에 드러났다. 그가 4살되던 1942년 일제에 강제동원돼 숨진 아버지 오일상(사망 당시 39)의 유골이었다. “아버지, 이곳에 계신 줄 알았다면, 당장 빚을 내서라도 모셔왔을 텐데….” 오씨의 아들 정경종(47)씨가 “어머니가 할아버님을 아버지라 불러 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라 하셨는데, 이를 이루시는 것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인다”고 말했다.
26일 오전 오씨 일행을 태우고 부산을 출발한 비행기는 세 시간여만에 홋카이도 삿포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자동차로 갈아탄 뒤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홋카이도 북서부의 작은 사찰 에이토쿠사였다. 유골의 행방을 찾는데 무려 7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이를 찾으러 가는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반나절이었다. 유족을 맞이한 절에서는 유골함과 고인의 창씨명이 아닌 본명을 적은 새 위패를 불단에 올려 놓고 종을 치며 독경을 했다. 오씨와 유족들이 유골을 향해 큰 절을 했다.
오씨에게 ‘부친의 유골을 찾았다’는 전화가 온 것은 지난해 8월 초였다. 오씨의 본적지인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면의 면사무소 직원이었다. 놀란 오씨는 아들 경종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종씨는 “갑작스런 소식을 믿을 수 없어 어머니가 ‘꿈을 꾼 게 아니냐’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날의 기적이 이뤄진 배경에는 조선인 유골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해 온 일본 시민들과 재일 조선인들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오씨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던 에이토쿠사는 인근 탄광에서 사망자가 나오면 이들의 장례식을 치러주던 절이었다. 주지 스님의 부인 나가사와 교코(65)는 납골당에서 보관 중인 유골 가운데 조선인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평소 알던 도노히라 요시히코 홋카이도 포럼’(이하 포럼)의 공동대표(홋카이도 이치조사의 주지)에게 연락했다. 포럼은 2003년 2월 결성 이후 홋카이도에 남아 있는 조선인 유골 발굴과 반환 사업을 해 온 시민단체다. 포럼의 조사를 통해 납골당에 보관 중인 ‘야마모토 잇소’(1944년 5월16일 사망)가 조선 출신으로 확인됐다.
오씨에게 아버지의 유골은 평생 마음의 짐이었다. 홀몸으로 딸 셋을 키운 어머니가 45년 전 숨지면서 “아버지의 유골을 꼭 찾아달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평생 이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아온 오씨는 2011년 아들 부부를 데리고 무작정 홋카이도를 방문한 적도 있다. 그러나 부친의 죽임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나흘 만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엔 아들 부부에게 괜한 부담을 줘 미안했다. 아버지의 유골이 이렇게 멀쩡히 보관돼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유족들에게 유골을 전달한 나가사와는 오씨의 손을 잡고 “홋카이도 포럼의 조사를 통해 유족들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기뻐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유족분들에게 유골을 돌려줄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오씨와 나가사와는 서로의 손을 어루만지며 “고맙다”(오씨)와 “죄송하다”(나가사와)는 말을 되풀이 했다.
오씨는 “이렇게 멀리까지 사람을 끌어와 일을 시켜놓고 유족들에게 유골도 돌려주지 않았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 하는 지금의 일본 총리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노히라 포럼 공동대표도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에 유골 문제 해결을 요구한 뒤 한국 출신 군인·군속의 유골은 반환됐지만 기업에 동원된 이들의 유골은 아직 방치돼 있다”며 “일본 정부와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했던) 기업들이 더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누마타(홋카이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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