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문화재 반환 요구 우려” 일본 정부 주장 수용
한국쪽 변호사 “문화재 반환 문제 미종결 인정한 셈”
한국쪽 변호사 “문화재 반환 문제 미종결 인정한 셈”
또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을 두려워한 것일까. 일본 정부가 “한국과 북한의 문화재 반환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한-일협정 문서 공개 요구를 거부하자 일본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일본 도쿄고등재판소는 지난 25일 한-일회담 문서공개 3차 소송 항소심 판결에서, “일본 정부가 비공개하고 있는 한-일 청구권, 한반도 유래 문화재 등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면 (앞으로 진행될) 북한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에서 북한에 유리하게 이용될 수 있고, 한국도 문화재 인도를 요구할 수 있어 일본이 교섭상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문서 공개를 요구한 혜문 스님 등 원고의 주장을 사실상 기각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이번에 일본 법원이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한 문서의 개략적인 내용은 오노 게이이치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 과장이 지난해 4월26일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노 과장은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한국관계 문화재 일람표 및 미술품 리스트’ 등 7개의 구체적인 문화재 목록을 거론하며 “이들 목록은 일한회담 당시 일본이 한반도 유래 문화재 가운데 한국에게 기증할 것과 기증하지 않을 것을 선별하기 위한 검토 자료로 작성한 것이다. 이 안에는 목록의 작성 취지, 문화재의 성질, 내용, 유래와 입수 경위, 취득 원인, 취득 가액 등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자료에는 일본이 한일협정 당시 한국에 반환한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물품의 장부가와 외무성이 추정한 시가 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이들 목록이 공개된다면, 일본이 한일협정 당시 한국에 반환(일본은 ‘기증’이라 표현)한 문화재와 반환하지 않은 문화재의 실체가 낱낱이 공개되고, 그런 결정을 내린 일본 정부의 ‘판단 기준’도 드러나게 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그렇게 되면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 협상이 어려워진다” “한국의 반환 요구도 재연될 수 있다”며 법원에 문서의 공개를 막아달라고 강하게 주장해 왔다.
이 소송의 원고인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 정부와 법원이 한국의 문화재 반환 청구가 재연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은 한일협정으로 문화재 반환 문제가 종결되지 않았음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판결의 의미를 해석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은 한국에 1431점의 문화재를 반환했지만 초혜(草鞋)라는 그럴듯한 한자명으로 짚신을 반환하는 등 가치가 낮은 문화재만 반환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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