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한반도에서 반출해간 문화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물들로 꼽히는 ‘오구라 컬렉션’을 반환받기 위한 소송이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 의궤 등 해외 반출 문화재 반환 운동을 벌여온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은 31일 “오구라 컬렉션을 보관하고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에 1일 문화재 소장을 중지하라는 내용의 ‘조정 신청서’를 발송한 뒤 20일까지 회신이 없을 경우 정식으로 일본 법원에 제소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구라 컬렉션은 일제 강점기 때 남선합동전기회사 사장이던 오구라 다케노스케(1896~1964)가 1922년에서 1952년까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유물 1100여점을 일컫는다. 이 가운데 39점이 일본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재들이 포함돼 있다. 이 문화재들은 오구라 사후 ‘재단법인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가 관리하다 1981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가운데 혜문 스님이 ‘박물관이 소장을 중지하고 한국에 반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도난 혹은 도굴의 의혹이 짙은 △‘조선 대원수 투구’(사진) 등 왕실 유물 9점 △경주 금관총 출토 유물 8점 △부산 연산동 가야 고분 출토 유물 4점 △경남 창녕 출토 유물 13점 등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지난해 10월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조선 대원수 투구, 익선관(고종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 등 왕실 유물 9점이다. 혜문 스님은 “오구라의 자필 수기를 보면 이들 문화재에 대해 ‘이태왕 사용품, 이왕가 전래품’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물건들은 당시 궁내부 이왕직(강제 합병 이후 조선왕조의 사무를 맡아보던 일본 궁내청 소속 관청)에서 관리했기 때문에 오구라가 이를 수집했다면 도난품을 사들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들 유물 가운데는 오구라가 1964년 작성한 목록에서 “민비(명성왕후)가 죽은 곳(경복궁 건청궁)에서 가져왔다”고 기술한 주칠 12각상도 포함돼 있다. 이 외에도 “경주 금관총 출토 유물 등 조선총독부가 발굴한 고분 출토품은 모두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그 후신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어야 한다. 오구라가 결국 도굴품을 불법으로 취득한 것”이라고 혜문 스님은 지적했다.
오구라 컬렉션은 1960년대 초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에 반환을 적극 요구했지만, 일본에선 ‘민간의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혜문 스님은 “일본 최고의 박물관인 도쿄국립박물관이 도난·도굴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한-일 양국 모두에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며 “박물관이 지금이라도 성의 있게 우리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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