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한·일 시민 500여명이 일본 도쿄 지요다구 하쿠산도리(하쿠산로)를 지나며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자 일본 우익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며 욕설을 퍼붓고 있다. 한·일 시민들의 촛불행진은 올해로 9회째를 맞았다.
한일 촛불행동 9돌 행사 현장
한일 시민 9년째 ‘야스쿠니 반대’ 촛불
한일 시민 9년째 ‘야스쿠니 반대’ 촛불
“멈춰, 위험해!”
9일 오후 7시, 일본 도쿄 지요다구 하쿠산도리(하쿠산로). 일본 우익이 운전하는 하얀색 승용차가 느닷없이 행렬을 향해 돌진하자 일본 경찰 수십명이 황급히 차 앞을 막아 섰다. 가까스로 충돌을 피한 자동차는 “차를 빼라”는 경찰의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존황’ ‘충군애국’ ‘우리는 야마토 민족의 후손’ 따위의 글자가 쓰여 있는 옷을 입은 일본 우익들이 잇따라 행렬을 향해 거칠게 뛰어들었다.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와 야노 히데키 ‘강제연행·기업책임추구재판 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이 이에 굴하지 않고 한-일 시민 500여명의 행렬을 이끌며 “전쟁 반대” “야스쿠니 반대”라며 구호를 외쳤다. 이영채 게이센여대 교수는 “현재 일본의 정치 상황을 반영하듯 우익들이 예년의 두배는 몰려든 것 같다”며 혀를 찼다.
침략신사인 야스쿠니신사에 반대하기 위해 2006년 8월 시작된 한-일 시민들의 촛불행동인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가 올해로 9년째를 맞았다. 이 모임을 통해 모인 한-일 시민들은 2008년과 지난해 등 두차례에 걸쳐 한국인 유족들의 야스쿠니 합사 철회 소송을 진행했고, 지난 4월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난해 12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행사를 준비하는 각오는 이전과 달랐다. 아베 총리가 일본 현직 총리의 직함을 달고 7년 만에 야스쿠니에 참배한 데 이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 등을 통해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작업을 착착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치다 변호사, 한국의 이석태 변호사 등 촛불행동의 공동대표단은 이날 발표한 선언문에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면 자위대가 해외에 파병돼 전사할 수 있고, 이 경우 야스쿠니신사의 영령들처럼 취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 행위가 “죽어서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며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옛 일본 군부의 모습과 근본적으로 같은 행동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실제로 <산케이신문> 등은 지난해 아베 총리의 참배 직후 “총리가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전쟁터에 나가는) 자위대에게 매우 강한 마음의 버팀목이 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날 행진에 앞서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전문가들이 강조한 것도 그 점이었다. 야마다 쇼지 릿교대학 명예교수는 “아베 총리는 지난 7월 집단적 자위권을 각의 결정했다. 시민들은 일본의 지도자들이 ‘군비(軍備)의 뿌리가 되는 애국심의 고양을 위해 노력해 온 60여년의 전후사를 명확히 인식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치다 변호사도 “야스쿠니신사는 지난 일본의 전쟁이 침략전쟁이 아니라 식민지 해방을 위한 성전이었다는 세계에서 통용될 수 없는 특이한 역사관을 갖고 있다. 이는 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 등 주변국들과의 국제적 합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애매한 태도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는 “미국은 일본을 재무장시켜 이를 미국의 세계전략에 활용하려 하지만, 일본 보수파들에게 있어서 재군비는 ‘야스쿠니즘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이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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